몸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지더니, 오후가 되자 견딜 수 없이 온몸이 아파왔다. 뒷목과 승모근이 뻣뻣해졌고, 머릿속은 뿌연 안개가 가라앉은 듯 아득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몸 상태는 더욱더 나빠져만 갔다. 그럴 땐 억지로 무언가를 밀어붙이기보단, 잠시 멈추고 쉬어가는 편이 낫다. 작은 걸 챙기려다 더 큰걸 놓치고 마는 경우가 생길 테니까. 결국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몸이 아파오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퇴근길에 둘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 밖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10여 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몇 번의 설렘을 느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설렘이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렸다는 것, 그래서 아픔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기억이 난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그 틈 사이 신발을 신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제법 의젓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발을 다 신고 일어선 그가 나를 발견했다. 눈이 땡그랗게 커졌고, 입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예뻤는지, 그 순간을 눈으로만 담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이는 달려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얼굴만 보아도 이렇게 웃음이 번지는 걸, 함께 있으면 서로의 온기에 이리도 취해버리는 걸. 우리에게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부모-자식 관계로 만날 수 있었을까. 전생에 얼마나 큰 덕을 쌓았기에 이토록 달콤한 행복을 매일 같이 맛보고 살 수 있는 걸까.
행복은 복잡할 게 없다. 이렇게나 단순하게, 불현듯 찾아온다. 특별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상황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잠깐의 여유, 숨을 고르고 손을 뻗으면 잡히는 곳에 행복이 놓여있다.
그러나 우린 '해야 할 일'에 치여서 '곁에 있어주는 일'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있으면서도 그저 휴대폰만 바라보고, 대화 중에도 다른 일을 떠올리며 얘기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보다, 머릿속에 쌓인 일들이 더 크게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온전한 대화가 오가지 못한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표현이 거칠어진다. 날카로워진 말투는 크고 작은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찌른다. 결국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을 그저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만다.
오늘 하루는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곁에 있는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자. 말없이 마주 앉아도 좋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도 좋다. 함께 있는 동안 서로에게 머문 온기는 오늘을 살아내는 또 다른 에너지가 되어줄 테니.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아이의 미소, 친구의 안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들 말이다. 그것을 그저 흘려보내느냐, 혹은 붙드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더 좋은 날이 찾아올 거라는 막연한 기다림보다, 오늘 내가 마주했던 기적 속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오늘과도 같은 하루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으니까. 지금 현재는 내가 살고 있는 유일무이한 시간일 테니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러보라. 그리고 서로에게 집중하라. 그것만으로도 그대의 하루가 완전해질 테니.
행복을 찾고 소중함을 배워가는 순간들, 그 시간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엄마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