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다는 건,
다정해지려는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그제야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부모가 된 후에야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부모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을 주는 방식이 서툴거나, 좋은 거울이 되어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집 안은 언제나 냉기만 맴돌았다. 아빠는 늘 무심했고, 엄마는 쉽게 언성을 높였다. 사랑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잘한 것에 칭찬을 건네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지적했고, 힘든 일에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약해지지 말라며 다그치곤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내가 다정하게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결혼하지 못할 바에 "나는 결혼하지 않겠어."라며 비혼주의를 결심했고, 그리 살겠다고 자주 입 밖으로 말하곤 했다. 내게 남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랄까.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질 않았다. 비혼주의자였던 난 20대 후반에 결혼했고, 2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임신 기간 동안 내내, 그리고 아이를 안은 첫 순간까지도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지금 느끼는 이 사랑이 언제까지나 너에게로 곧게 향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평생 너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줄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은 현실로 드러났다. 난 자상한 엄마가 되어 주질 못했다. 특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 날에는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의 느린 동작 하나, 반복되는 질문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요동쳤다. 피곤이 쌓이면 말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표정은 자꾸 굳어져만 갔다.
'내가 그리던 나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상상했던 나, 그리고 현실 속 나와의 간극이 자꾸만 벌어졌다.
그러다 깨달았다. 다정함은 마음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몸이 지쳐버리면 사랑은 모양을 잃어버렸다. 내가 자상한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건, 서늘한 기억들로 채워진 성장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돌보는 데 서툴렀던, 건강한 몸을 가꾸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시간들 때문이었다. 마음이 앞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다정함조차 금세 스러지고 만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피곤한 날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내일로 미뤄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끝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무리했을 일들을 그날만큼은 잠시 내려놓았다.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음미하듯 식사를 했고,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며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느긋한 리듬 속으로 나를 내던졌다.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되는 날엔 마음을 비우기 위해 걸었다. 몸속에 켜켜이 쌓였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땀과 함께 흘러나갔고, 움직일수록 근육은 단단해져 갔다. 탄탄해진 근육만큼이나 마음도 제법 단단해졌다. 몸이 안정되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예민하게 반응했을 순간들에도 숨을 고를 줄 알았고, 조급해하며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다정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면, 먼저 나를 살뜰히 대해야 한다. 건강한 몸이 바탕이 되어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그 여유 속에서 아이를 향한 부드러운 시선이 자란다. 운동이든, 산책이든, 명상이든,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시간은 결국 아이와의 시간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정함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습관으로 지켜내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위한 돌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를 향한 다정함을 오래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먼저 돌본다. 나를 살피는 일은 아이를 위한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다정함을 품고자 나를 먼저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