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고 가장 먼저 배운 건 ‘우는 법’이었다.
아기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우린 매일같이 울기만 했다.
온종일 울어 댔다. 긴 시간 충분하게 수유했고, 어깨와 손목이 저릴 만큼 안아도 줬고, 기저귀도 자주 갈았기에 엉덩이가 뽀송했다. 그러나 아기는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울기만 했다. 그러다 쿨쿨 잠든 아이를 보면 마음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피로해서 자는 게 아니라, 마치 울다 지쳐 쓰러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기가 울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는 건가. 우는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10개월간 뱃속에 품고 있었으면서도 아기 마음 하나를 헤아리지 못했다.
"아가, 대체 왜 울어. 왜 자꾸만 울기만 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왜'라는 질문만 공허하게 흩어졌다. 내 자식이 특히 유별나서, 예민해서 울고 또 우는 줄 알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참고 견디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며칠 후,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가녀린 팔에 바늘을 꽂으며 말했다.
"탈수가 왔네요. 모유만 먹이셨어요? 수유량이 적었나 봅니다. 분유도 같이 먹이세요."
심장이 쿵.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후 한 달도 채 안된 아기였다. 탈수라니.
최선을 다해 먹였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또는 그보다 더 자주 수유했다. 아기가 울 때면 벌떡 일어나 품에 안고 젖을 물렸다. 반응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뒤늦게 눈을 뜬 남편이 놀랄 정도였다. 젖몸살로 온몸이 찌르듯 아파왔지만, 있는 힘을 다해 참고 견디며 나를 내어주었다. 각종 육아 서적뿐 아니라, 수유 방법을 배우기 위한 영상도 수없이 찾아보았다. 사랑이었기에 가능했다. 아니, 사랑이라고 믿었기에 고집했던 모유 수유는 결국 나만의 아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으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모성은 본능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엄마'라는 이름은 받을 수 있었지만, 난 여전히 미숙하기만 했다.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늘 처음이었고, 처음은 언제나 서툴렀다. 우는 이유도 몰랐고, 수유량도 몰랐고, 배앓이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 아이인데도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난 엄마가 될 준비도, 자격도 부족했던 걸지도.
어설픈 내 품 안에서 울기만 했던 아이를 떠올리며, 자꾸만 나를 탓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난 엄마로서 자격이 없나봐' 자책의 말들이 꼬리를 물었고, 끝내 죄책감이 되었다. 그래서 자주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들을세라 엉엉 울지도 못하고, 베갯잇을 적시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눈물 속엔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미안함, 슬픔, 후회, 좌절, 분노 그리고 인정. 미완성된 엄마였음을, 여전히 부족한 엄마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게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뿐해졌다.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엄마 또한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것. 누구든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건 아니라는 것. 낯설고 서툰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두려운 법이었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미숙하고, 불완전하더라도 그 안의 사랑만은 분명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니 매일을 연습의 과정으로 여기기로 했다. 완벽할 수 없고, 때로는 버겁겠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기로 했다.
아기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는 중이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만의 속도로. 그래서 오늘도 서툴지만 엄마로서의 하루를 열어본다. 내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따스하게 스며들길 바라며. 미안하다고 속삭이던 날들을 지나,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날들을 향해.
"미안해, 서투른 엄마라서."
나는 여전히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한 여정 속에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너를 이해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용서해보려 한다.
사랑은 완벽함 속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지켜내려는 의지에서 자란다. 그렇기에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엄마라는 이름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