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이의 솔직함 앞에서 움찔한다. 말이나 글로 전해지던 그녀의 진심을 이번에는 일기장을 통해 마주하게 되었다.
얼마 전 딸아이가 쓴 일기장을 몰래 읽었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일기장은 읽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주제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이었다. 제목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례를 보고 배우며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있다는 걸 선생님들은 모르는 걸까. 정말 답답하다. 효과적이지도 않고 지루하기만 한 교육을 앞으로도 계속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울 뿐이다.'
한동안 일기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아무리 일기장이라지만 선생님의 험담을 써놓는 걸 좀 지나치지 않은가.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직설적인 글을 써놨는지 궁금했다. 일기장을 몰래 보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했지만, 이야기를 꼭 들어야 했다.
"딸, 이거 선생님이 보고 나서 도장 찍어 주지 않아?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괜찮아? 선생님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잖아."
"왜? 이거 내 일기장이야. 일기니까 솔직하게 쓰는 게 맞지. 보기 싫으면 내 건 안 보면 되잖아. 그리고 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평범하던 애들도 방법을 알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이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저 숙제 검사만 하면 되는 것이고, 일기장에는 나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담으면 되는 것이다.
머리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난 그렇게 일기를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뿐 아니라 엄마도 내 일기장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정한 선을 지켜가며 글을 써 내려갔다.
돌아보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했다. 슬펐지만 "괜찮다"라고 말했고, 힘들었지만 "좋았다"라고 표현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매일 감사할 사람과 꺼리를 찾아야 했다. 마음에서 우러났던 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일기장은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일과를 돌아보고 소재들을 하나씩 꺼내어 억지로 짜깁기 한 동화말이다.
아이의 일기장을 본 그날, 밤과 함께 생각도 깊어져만 갔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왜 늘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아이의 단호한 대답에 마음이 날카롭게 베어버렸다. 아팠지만 이제라도 직시해야 했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했다.
육아는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부모인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오늘도 야무진 아이 덕분에 깨달았다. 나에게는 연습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연습.
엄마도 사람인지라 흔들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준비한다.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보다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한다. 부족한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이 내 삶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솔직함은 때론 불편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성장은 언제나 진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진심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멀리 돌아가 전해지지만 결국 마음에 가 닿을 테니까.
완벽한 육아가 없듯, 완벽한 어른도 없다. 그렇기에 매일 배우고자 노력한다. 삶은 꾸밈보다는 진심에 기댈 때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솔직해지려 한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그 진심이 내 삶을 바꾸어 갈 테니까. 어쩌면 나를 바꾸는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그런 서툰 진심이 담긴 한마디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