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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건네는 연습

by 안개별


아이 둘을 동시에 품기엔 부족한 시간과 여유 탓에, 이따금씩 그들의 마음에 서운함이 자라난다. 주고픈 사랑은 끝이 없지만, 매 순간 온전히 닿지 못해 오해가 남곤 한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차를 타고 멀리 다녀온 날이었다.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던 아이들을 깨웠지만 둘째가 도통 일어나질 못했다. 이제는 꽤 무거워져 버린 녀석을 들쳐업고 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키 큰 첫째를 앞좌석에 앉히고 30분쯤 재웠다. 다리가 길어 불편할까 봐, 그나마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피곤함이 가실 즈음 눈을 뜬 둘째는 울음을 터뜨렸다.

"왜 누나만 앞에서 자? 나도 여기서 잘 거야."

자신의 옆에 있던 누나가 앞좌석에서 자고 있다는 이유였다.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아이의 목소리는 천둥이 되어 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불같은 기운을 애써 눌러앉혔다. 둘째는 지하 주차장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내내 울어 젖혔다. 푹 쉬고 일어난 탓인지 기운이 넘쳤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소파에 누워 엉엉 울었다. 빨리 차에 가자고, 조수석에서 자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짜증과 불만 섞인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 둘째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울다 보면 지치겠지, 힘들면 그만 울 테지. 잘못된 일임을 스스로 뉘우칠 수 있기를 바랐다. 무작정 떼를 부리는 아이에게 져줄 생각이 없었다.


둘째는 시간이 지나도 토라진 마음을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계속 울기만 하다가는 목이 상할 것도 같았고, 탈수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화로 풀어야겠다 싶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누나가 앞에서 잔 게 그렇게 서운했어?"

"응. 나도 앞에서 잘 거야. 빨리 차로 가."

투명한 호수 아래 비친 조약돌마냥, 아이의 눈 속에 서운함이 가라앉아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건네며 마음을 전할까.


"엄마가 누나를 더 사랑해서 엄마 옆에 재웠다고 생각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엄마 옆자리는 언제나 네 자리였어. 누나가 엄마 옆자리 탄 거 봤어?"

아이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승기는 엄마 옆자리에 몇 번이나 탔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세어 보더니, 더는 셀 수 없다는 듯 양팔을 쫙 벌리고는 이렇게 답했다.

"... 많이큼."

"거봐, 엄마 옆자리는 언제나 네 거였잖아. 내일은 엄마 옆에 타서 코 잘까? 누나는 한 번 잤으니까, 승기는 세 번 자는 거지. 어때?"

아이 얼굴 위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금세 걷히더니, 햇살 같은 미소가 환하게 피어났다. 아이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그토록 울며불며 원했던 것은 자가용 앞좌석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그 마음이었다. 투정 속에 숨겨져 있던 투명한 마음. 불끈하고 올라와 버린 나의 감정에 못 이겨 아이와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녀석의 마음 따윈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건넨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눈을 맞추고, 표정과 눈빛 속에 담긴 속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꼭 닿는 말을 전해야 한다. 아이와 눈을 맞추었기에 그 속에 잠겨 있던 서운함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마음에 작은 다리를 놓아주듯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그저 한 마디였다. '엄마의 옆자리는 너의 것'이라는 그 작은 속삭임에 금세 마음을 풀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은 대단한 마음이나 화려한 선물을 전할 때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그 짧은 찰나에 가장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닿을 수 있다. 사랑을 그저 내가 주고 싶은 방식으로만 건넨다면 오해로 남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연습이 필요하다. 서툴고 어설퍼도 다가가 보는 연습,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어내는 연습, 그리고 용기 내어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연습.


삶은 완벽할 수 없지만, 사랑은 연습할 수 있다. 그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면 서운함은 금세 사라질 것이고, 오해가 쌓일 일은 더욱이 없을 것이다. 결국 부모와 자식 사이를 이어주는 건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서툴지만 꾸준히 건네는 사랑의 연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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