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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Feb 16. 2022

직장 내 젊꼰이 부모가 되면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바빴다. 직장과 자아가 과도하게 일치된 삶을 살았다. 출근길 지하철 1호선 선로를 바라보며 몇 번인가 극단적인 상상도 했다.      


 돌아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일할 곳은 널렸는데 죽긴 왜 죽어?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위기 속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통계적 상황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몰아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봐야 나만 아프다. 파도 위를 유영하듯 위기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또한 연차에 따른 연륜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부모인 동료들이 많다. 부모가 되고 달라진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싱글이던 시절, 아이가 아파서 자주 연차를 내는 동료 앞에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팀 프로젝트가 쌓여가는 중에 휴가 쓰는 일이 잦은 직원에게는 솟구치는 분노마저 느꼈다. 아니, 내 연차 가로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각박했담? 요즘 말하는 젊꼰’, 바로 20대 후반의 나였다.



사무실을 나서는 네 뒷모습에서~ 내 동공은 흔들린 거야~ (출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쥐콩만한 아량으로 동료 직원을 바라보던 나는 부모가 됨과 동시에 내가 비난하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출근하려고 아이를 들쳐업은 순간 열이 끓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을 수 없어서, 야간반 선생님이 8시에는 퇴근하기 때문에…. 잊을만하면 한 번씩 ‘팀장님 죄송하지만 아이가(블라블라….)’를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기준 0.84명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아이를 낳을만한 환경이 되도록 국가는 제도를, 기업은 근로여건과 조직문화를, 개인은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최근 사내 MZ세대 직원들이 모여 만든 조직문화 수칙 중 재밌는 문구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약속된 근무시간을 준수한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고, 6시 1분도 6시가 아니다.

  


 지각은 당연히 안 되지만 퇴근 시간이 다 지나도록 책상만 긁으며 눈치싸움 하는 비효율 역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입장에서 쌍수 들고 환영할만한 문구가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건, 산업계 전반의 변화다. 많은 기업에서 야근 없는 문화를 위해 PC셧다운제를 실시하고(바쁜 시기엔 불편할 때도 많지만), 육아휴직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주어진 업무만 누수 없이 잘 챙긴다면 동등하게 부여된 본인 연차를 차감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직원에게 도끼눈을 뜨는 직원은 없다.  

   



 얼마 전, 퇴사한 직장 선배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편한 마음에 맞벌이 부모의 힘듦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볼멘소리를 하자 그가 말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건 아니잖아. 니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잖냐. 


 ‘아차차’ 싶었다. 싱글인 그는 과거의 나였다.     


 두 입장을 다 경험했으니 나는 선배의 말을 이해한다. 인간관계에서 에둘러 말하는 타입보다는 직설적인 타입이 훨씬 편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날도 속으로 좀 궁시렁대고 말았다. , 아프니까 팩트로 때리지 말아줘요. 피해는 안 끼칠게요. ‘그렇구나한마디면 안 될까요? 밥값도 내가 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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