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벽한 가족 Feb 06. 2022

아빠를 패고 싶다는 아이

민법 제915조 폐지가 남긴 숙제

“친권자는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 민법 제915조(폐지)  


2021년 1월 민법 제915 조항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되었다. 1958년에 제정된 이후 62년 만이다. 그러나 여전히 체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법이 모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고, 학대를 정당화하는 모든 불씨를 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60.7%는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도 답한다.     


3040세대 부모들 중 많은 수가 체벌을 목적으로 맞아본 경험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맞아서 잘 컸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여전히 기억 속 모든 장면마다 분노한다. ‘규칙이나 약속이 존재했던’ 상황 중에는 상대적으로 분노가 덜한 기억들도 있다. 그렇다면 약속이 존재하는 체벌은 모두 타당한 것일까? ‘숙제를 안 해서’, ‘골고루 먹지 않아서’, ‘잠들지 않아서’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모두가 약속과 규칙을 이야기할 것이다. 무수히 죽어간 아이들 앞에서 누구도 체벌의 정당성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여기, 한 아이가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을 함께 보자.     




제목: 아빠를 패고 싶어요



지금 중3, 시험이 7일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짜증 나서 공부하다 말고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빠를 패고 싶어요. 일단 저는 공부도 잘하고 나름 모범생인 학생이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일지 몰라도 맨날 속으론 ‘아 진짜 저 새끼 죽여버리고 싶네’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패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빠고요.


제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안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리고 욕해도 된다는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고는 있는 그런 법이었습니다. 당연히 힘 있는 사람 즉 돈을 벌어오고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사람이 바로 아빠였고요.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제발 때리지 말라고 빌고 있는 제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 정도가 막 진짜 TV에 나올 정도로 심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굉장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르니까요. 한 7살 때부터 그러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고작 7살짜리가 뭘 안다고 그랬을까요.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될 나이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릴 일이었을까요. 저는 그저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에게 맞을 때, 그리고 혼자 방안에서 울고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십니까? 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이러다가 뭔 병이라도 하나 생길 것 같아요. 이렇게 길게 제 이야기를 적어본 게 처음인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답을 바라고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뭐 뉴스에 나올만한 짓은 안 할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저는 이만 자러 갈게요.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를 이해하려고 한다. 아무리 배울 것 없는 사람이라도 부모는 부모다. 나를 만든 사람이자, 의식주 등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할 존재다. 내 삶을 좌우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밉보이고 싶은 아이는 없다. 사연 속 아이 역시 아버지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을지언정 ‘뉴스에 나올만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은 그렇다. 약자와 강자의 관계가 역전된다면 어떨까?


이웃이 시끄럽다고, 배우자가 약속을 어겼다고, 동료 직원이 실수했다고 상대를 때리진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 때릴 수 없으니, 자식 역시 다르지 않다. 천부인권(天賦人權)의 이치다.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체벌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부모 입장에서 손쉬운 방식이다. 체벌을 당한 아이들은 두려움, 공포 등의 감정을 느낀다. 폭력의 효과는 표면적이고 일시적일 뿐, 사연 속 아이처럼 속 깊은 분노를 품고 자라게 된다.    

 

아이와의 소통이 힘든 매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부여잡고 ‘좋은 부모’답게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것만큼은 기억하자.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어떤 세상을 만나게 할 것인지는 부모의 말과 행동에 달렸다. 아이의 자랑거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민법 915조 폐지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의 과제다. ■

작가의 이전글 어쩔티비와 라떼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