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말이 옛날만큼이나 내게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것 같다. 계절이 바뀌고 입고 있는 옷이 얇을수록 홀가분한 느낌과 함께 몸이 느긋해지면서 자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에 요즘은 더 끌리게 되는 것 같다.
'분위기'라고 할 수 있나?
식사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술도 안 마시고. 노는 것도 시간 맞춰서 하고 돈도 예전처럼 쓰지 않고 주위에 있는 것들에서부터 추억이 느껴질 정도로 오래된 문학들이 꽂혀있는 내 책장처럼 현재의 것들 속에 다시금 조금씩 무언가를 음미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들을 보면 러시아 소설부터 시작해서 영미소설. 일본소설. 프랑스 소설까지 한 권의 책을 천천히 다시 쓱 훑어보니 저마다의소설들이 나만의 시각으로 그 당시에 열정적으로 또는 감동 넘치던 장면들에 대한 나의 찬사와 같은 글들이 책 속 여백에적혀있는 것을 볼수 있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내적 세계를 꾸미는 것보다는 자연적이며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즐겁다고 느끼거나 고요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경과들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계절이다.
특히 여름 같은 계절이 더 그런 것 같다. 덥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며 익숙한 장소 그늘아래에 앉아 있으면 마음마저 편안해지며 사물 하나하나가 더 구체적으로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은 어떤 시선이 생겨나 마음마저 고요해지는 것처럼. 이런 순간에는 책의 글자마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한 단어 한 단어끼리 연결되는 그 부드러운 시선의 움직임으로 조화롭게 만들어진 텍스트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과 새로운 시선을 얻을 정도로 나에게는 각별하며 혹시 만약 다른 누군가도 이에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물론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제외하면 말이다.
특히 일본소설이 그런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낸다.내가 여름만 되면 한 번씩 읽는 일본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나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작품이 대표적일 것이다.
<坊ちゃん(도련님)_ 핀터레스트>
도련님 같은 작품은 사람을 금방 철들게 만들 것같은 분위기를 느끼게하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소설 속 도련님의 철부지 같은 행동들을 전부 받아주시고 그런 행동마저 이로운 쪽으로 생각해 주며 끝까지 도련님을 믿고 늘 귀엽게 바라봐주며 항상 의지할 수 있게 도움과 신뢰 그리고 가족애 같은 자상함을 늘 주는
'기요' 덕분일 것이다. 나는 책을 보는 내내 어린 주인공이 기요에 대해 하는 여러 속마음들을 읽으면서 제발 철 좀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일본문학의 문체나 분위기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약 일본의 어떤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데 문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접하고 싶다면2007년에 개봉한 영화 <텐텐>을 한번 시청해 보길 바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내 표현대로 간략히 설명하면 주인공인 후미야가 사채업자인 후쿠하라와 같이 도쿄를 산책한다는 내용이다. 좀 더 설명을 추가하면 후미야는 빚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 후쿠하라를 만나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후쿠하라는 후미야에게 어떤 제안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과 함께 도쿄를 산책해 달라는 것이었고 그 대가로 백만 엔을 준다고 약속했다. 후쿠하라는 바람난 아내를 살해했고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여정을 후미야와 함께 해 줄 것을 제안한 것이었고 후미야는 제안을 받아들여 이 둘은함께 도쿄를 산책하게 된다.
<영화 텐텐(転々)_핀터레스트>
따뜻함과 잔잔한 분위기를 오랜만에 한번 느껴보고자 하시는 모든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해본다.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부드러운 것에 더 끌리게 되었다. 가끔씩은 이런 순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너무 힘들 때는 생각을 멈추기도 하고 동시에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 순간의 여름을 제대로 부드럽게 느껴보려고 노력해 본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느낀것은 늘 새로운 것을 느끼고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오히려 마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것이다.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를 한 번은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