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랑 어느정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책을 빌리지 않고 그저 같은 책만을 읽는 나에게 처음으로 책을 추천해주셨다.
김동식 작가의 <성공한 인생>이라는 작품이였는데. 여러가지 재미난 단편들을 모아 하나로 묶어놓은 단편집이었다. 책의 내용은 쉽고 재미있어서 한 자리에 앉아서 전부다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당시에 나오던 김동식 작가의 단편집을 다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단편집 10권이 한 세트였는데 당시에는
아마 7권 <살인자의 정석>이라는 단편집까지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실제로 우리 중학교로 김동식 작가가 작가초청으로 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김동식 작가님은 반가운 얼굴로 학생들한테 이야기하며 자신의 책과 작가가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공장에서 일을 하셨던 김동식 작가님은 심심한 나머지 여러 공상들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어느 커뮤니티에 올려 나중에는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어느순간 작가가 되었고 자신의 글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김동식 작가님은 이야기를 하면서 즉석에서 하나의 단편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용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동네의 길 고양이들을 죽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인공은 그 범인을 잡아 그를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려고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범인은 뒤에서 길고양이들에 대한 후원과 봉사를 하고 있었고 매년 길고양이들을 위한 캠페인과 기부금도 낸다고 하는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남자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게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길고양이를 죽인 범인이라고 세상에 알린다면 다시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기부금과 도움을 일절 그만둔다는 것이다. 자신은 실제로 길고양이들을 죽인 횟수보다는 자신의 기부금을 통해 매년 더 많은 길고양이들이 살아갈수 있다는것을 밝히면서 만약 자신의 범죄를 사람들한테 알리면 모두 기부금과 관련 도움을 끊는다고 남자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 김동식 작가님은 우리들을 향해 질문하듯이 그 질문을 똑같이 우리들에게 했다.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잠시 멍해지더니 여러 친구들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길고양이를 도와주는 사람의 범죄를 눈감아주자!
아니다. 무조건 진실을 밝혀야 한다.등등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이것은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되어야만한다.라는의견에 찬성할것인가. 아님 반대할것인가?의 의견인 것 같다.(물론 다른 관점도 있을것이다.)
나는 김동식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저렇게 한번에 이야기를 만들어낼수 있는것이바로 작가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낼수 있는 능력. 분명 이 과정을 만들기란 조금은 힘들겠지만 소설가가 되고자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자질인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시기는 코로나가 막 유행하던 2020년도였다. 모두가 입학을 하면서 중학생 시절의 모습을 던지고 이제는 입시에 대해서 생각하던 시기. 그때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모여있었다.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다. 중학교때의 그 '침묵'하는 습관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접근하면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되는 버릇까지 생기게 되었다. 나는 책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영국의 추리소설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책속 인물들에게 깊은 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특히 푸아로라는 캐릭터는 내 마음에 속 들었다.
그가 말하는 특유의 말투와 유머. 그리고 '회색 뇌세포'(그는 말마다 자신의 회색 뇌세포를 언급하며 자랑한다.)에 대한 이야기와 '무슈'나 '마드무아젤'같은 푸아로의 말이 조금씩 내 입에서도 그의 점잖은 행동과 말이 닮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들은 나를 점점 세계와의 단절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책만 있다면 다른 누군가와는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속 세상이 현실보다 더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내내 애거서 크리스티만 읽었던 것 같다. 공공도서관에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은 거의 웬만해서는 다 읽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느때처럼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고있었다.
<에지웨어 경의 죽음>이라는 책이였는데. 처음에는 내가 추리하던 것이 이어지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푸아로와 함께 곤란을 겪게 되었다. 아마 이 작품이 푸아로가 맡은 사건중 가장 어려웠던 사건이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누가 쓰는 거지? 작가들은 정말 대단하군!'
하고 생각했다. 나는 내 주위가 환해지면서 눈앞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똑바로 보이게 되었다.
그래. 작가가 되는거야. 소설가가 되는 거야. 라고 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분명 수업시간에 몰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아마 모든 작가들은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상도 그들의 관점에는 미학적으로 표현할수도 있고 우스꽝스럽고 재미있게 묘사할수도 있는것 같다. 한번은 봄이 다가오기 전, 집 근처 공원쪽 숲속을 지나가다 다람쥐 한마리를발견했는데. 다람쥐는 뒤에서 내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는지 낙엽 위에 살포시 앉아있었다. 그러다 나뭇가지 소리때문에 뒤를 휫 돌아보더니 금세 달아나 버렸다. 한번 그 장면을 보고나서 나는 소로우의 <월든>이 생각났다. 책에서는 붉은 개미 두마리가 한마리의 거대한 검은 개미와의 전투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그 묘사자체가 나중에는 긴장감 넘치면서
정말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싸우러 나가는 용맹한 장수를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중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내용을 인용하는 모습은 내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개미족의 아킬레우스로서 홀로 떨어져 분노를 삭이고 있다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구하거나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리라.
<월든_이웃의 동물들 334p>
정말 작가라는 것은 시인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 자연속의 개미들의 싸움에서도 이토록 재미난 이야기로 바꾸어 쓸수 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다.그들에게는 비가오는 날 곤충들이 작은 네잎 클로버 밑으로 숨는 모습을 보고서는 커다란 우산속에 숨었다고 표현할 것이다. 창문에 비친 모습과 그 넘어에 존재하는 세계를 결합시켜 또다른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며 여러 각도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할려고노력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러한 기술과 능력들이 만들어졌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노력없이 글쓰기의 능력을 향상시킬수는 없는 법이다.
그때부터 나는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책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러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하다고 하는 고전문학들을 읽기 시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카뮈. 헤르만 헤세. 윌리엄 골딩. 나보코프.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 등등 아마 이보다 더 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한 작가의 모든 텍스트를 한번 읽어보자고 생각되는 작가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 같다.
출처 핀터레스트 <모험을 읽는 소년>
진정 좋아하다면 한 작가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볼려는 원대한 여정을 시작해볼 것이다.
지금도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매번 바뀌는 것 같다.
'겨울에는 이 작가의 책이. 여름에는 이 작가의 책이.' 하면서
시간에 따라 또는 '이 장소에서는 이 책이지. 공원이나 바닷가앞에서는 이 작가가 최고지.'하면서 공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겨울에는 러시아 소설에 영향을 받아 도스토예프스키같은 우울한 느낌의 소설을 써볼려고도 했다. 모든 러시아 소설은 그 놈의 악마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나도 그 표현을 내 글에다가 써보니
그 분위기에 따라 러시아적인 느낌의 글을 어느정도는 모방할수 있게 되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름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동양적인 미와 더불어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느껴지는 그 평안한 감각에 심취해 그의 글을 따라해볼려고 시도해본적이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 <도련님>은 일본문학 작품중 내가 손에 꼽을 정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언젠가는 꼭 일본을 여행한다면 소설속 배경인 된 마쓰야마는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을먹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것은 새 생명을 부여받는 것처럼 시간과 타협하지 않으며 늙지도 않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창작에 완전히 몰두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그의 신체는 늙었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뉴웰 컨버스 와이어스라는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1882-1945. 핀터레스트>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여러 방향에서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를 통해서 소설가로서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쓰고싶은 장르가 조금은 바뀌기는 했지만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그 열기가 아직까지도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그래도 아직은 좀 내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 더 많은 글을 읽어봐야 할것 같고, 위대한 작품이라 알려진 여러 문학작품들의 글을 한번 모방해보면서 나만의 글쓰기를 한번 만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그리고 언젠가 사람들 앞에 내 소설을 내보일수 있는 순간이 오기까지를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모든 소설가가 저마다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그래도 나는 그 작은 출발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사실이고 의미있는 기억으로 자리잡아 계속 펜을 잡을수 있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