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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May 31. 2022

가장 큰 거짓말

04.01.2020 5:30 AM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어 빌어주소서.


나는 무료할 때 가끔 묵주 기도를 머릿 속으로 되뇐다. 불면증의 밤이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거리를 걸을 때 머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제일 많은 경우는 버스를 타고 갈 때이다. 차 타고 멀리 갈 때 늘 묵주 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16년 겨울에도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대학 입시가 끝난 뒤였다. 그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혼자 만의 시간이 없던 나는 그 때 홀로 떠나는 나들이를 계획했다. 목적지는 혜화로 정했다.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아침 일찍 포항 시청 간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다. 휴대폰을 보고, 음악을 듣다 창 밖을 본다. 그러다 모든게 지루해지면 나는 그 때 부터 묵주 기도를 외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무언가를 바라며 기도를 하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곧 높은 건물과 두배는 많아진 차들이 보이고 버스는 서울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더듬어 3호선과 4호선을 타고 혜화역에 도착했다. 당시 내 기억에 혜화는 굉장히 커 보였다. 외국에 온 것 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다. 나는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비오는 주말의 학교는 사람도 없고 휑했다. 꽤나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난 어떻든 상관없었다. 3년간 흘린 내 땀과 피가 눈 앞에 있었다. 이 학교, 이 동네에서는 모든게 다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어제가 힘들었던, 오늘이 잘 안풀리더라도, 내일이 불안하더라도. 어제와 오늘보단 내일이 더 밝기를 바라고, 믿고 사는 것이다. 그걸 다르게 말하면 목표나 꿈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그런 미래를 맞은 확률은 매우 낮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는 거짓말, 삶을 유지시키는 가장 큰 거짓말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결국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 죄인들이 가득한 셈이다.


19살의 내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더이상 혜화는 크게 느껴지지 않고 높은 건물들이  익숙하다. 학교는 여전히 사람이 적고 휑하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많더라도 휑하게 보인다. 3년간 흘린 피와 땀은 이제 더 많은 피와 땀을 요구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그 간의 내 거짓말에 눈 감고,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을까. 19살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로등 불빛 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꺼이 죄인이 되기로 한 19살의 나 처럼, 지금의 나도 거짓말을 꾸미며 살 수 밖에 없다. 늦은 새벽, 불켜진 방 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거짓말쟁이 죄인이 되기로 한다. 이번만큼은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길 바라면서.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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