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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Jan 28. 2024

흡연과 영화

평생을 참는다는 것

저는 금연 중입니다.

흡연은 좋은 게 아닙니다.

사실 마냥 안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겠지요.

뭔가 머리를 쓰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그 순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 때가 많았거든요.

같이 피러 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물고 나누는 이야기들.

담뱃불을 끄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도 상관없는 아무 쓸모 없는 이야기들.

담뱃잎과 잡담들은 휘발성이 강할수록 재밌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금연을 하느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몸에 안 좋으니까 금연을 합니다.

백해무익하고 냄새만 지독한 담배.

재밌기만 하고요, 얻는 건 별로 없는 게 담배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가족력이 있답니다.

양가 모두 가족력이 암이에요.

담배 들숨 날숨에 제 수명이 실시간으로 날아가는 셈이지요.

왜 갑자기 담배 이야기를 하냐면,

흡연과 영화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적어도 저한테는요.

재밌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런데 얻는 건 없을 가능성이 다분한,

그럼에도 매몰비용만은 뚜렷한,

내 수명과 맞바꿔 얻는 즐거움.

아직은 모르지만 높은 확률로 휘발성만 가득한 두 존재.

저는 영화를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습니다.

20살도 되기 전부터요.

마치 금연을 다짐하는 흡연자처럼.

재미야 있겠지만, 나한테 남는 게 없을 거 같아서.

하다가는 내가 빨리 죽어나가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영화는 안 할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의 전공과 학교도 그렇게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7년 전의 이야기로군요.

이 글을 읽으실 분들 중 금연을 해보신 분이 있을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안 해보셨더라도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금연은 참 어렵습니다.

삶의 어떠한 부분을 평생 포기하겠다 다짐하는 일이 어디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었는데요.

금연을 결심하고 담배를 참다가 어쩌다 다시 피게 됐을 때의 그 느낌을 아시나요.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고 그 틈 사이로 재미를 크게 느꼈을 때,

그럼에도 그 장벽을 다시 매워야만 하는 그 오묘한 감정을 아시나요.

얼마 전 영화를 찍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준비한 졸업영화를 찍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정말로.

온몸의 피가 쌩쌩 돌아가는 그런 느낌.

금연을 어기고 담배에 손을 댄 흡연자,

다짐을 어기고 영화에 발을 딛은 나 (물론 졸업하려면 해야만 했지만).

담배가 머릿속을 다시 가득 매우겠죠.

제 머리 속도 영화 생각으로 가득 차는 듯합니다.

물론 금연을 어길 생각도 없고, 영화로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담배를 견뎌낼 건강도, 영화라는 꿈을 이어갈 재능도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그랬죠. 세상에 금연이라는 건 없고, 참는 일 밖에 없다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영화도 제게 그러할 듯합니다.

내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영화는 관심도 안 가졌으면 합니다.

남은 이번 생은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참아보렵니다.

p.s.

원래 이번 영화 편집도 다 끝나고 영화제 출품 시도도 다 끝났을 때 할까 했던 이야기였는데,

금연도 주변 사람들한테 금연 사실을 말하는 게 효과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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