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참는다는 것
저는 금연 중입니다.
흡연은 좋은 게 아닙니다.
사실 마냥 안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겠지요.
뭔가 머리를 쓰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그 순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 때가 많았거든요.
같이 피러 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물고 나누는 이야기들.
담뱃불을 끄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도 상관없는 아무 쓸모 없는 이야기들.
담뱃잎과 잡담들은 휘발성이 강할수록 재밌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금연을 하느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몸에 안 좋으니까 금연을 합니다.
백해무익하고 냄새만 지독한 담배.
재밌기만 하고요, 얻는 건 별로 없는 게 담배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가족력이 있답니다.
양가 모두 가족력이 암이에요.
담배 들숨 날숨에 제 수명이 실시간으로 날아가는 셈이지요.
왜 갑자기 담배 이야기를 하냐면,
흡연과 영화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적어도 저한테는요.
재밌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런데 얻는 건 없을 가능성이 다분한,
그럼에도 매몰비용만은 뚜렷한,
내 수명과 맞바꿔 얻는 즐거움.
아직은 모르지만 높은 확률로 휘발성만 가득한 두 존재.
저는 영화를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습니다.
20살도 되기 전부터요.
마치 금연을 다짐하는 흡연자처럼.
재미야 있겠지만, 나한테 남는 게 없을 거 같아서.
하다가는 내가 빨리 죽어나가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영화는 안 할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의 전공과 학교도 그렇게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7년 전의 이야기로군요.
이 글을 읽으실 분들 중 금연을 해보신 분이 있을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안 해보셨더라도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금연은 참 어렵습니다.
삶의 어떠한 부분을 평생 포기하겠다 다짐하는 일이 어디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었는데요.
금연을 결심하고 담배를 참다가 어쩌다 다시 피게 됐을 때의 그 느낌을 아시나요.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고 그 틈 사이로 재미를 크게 느꼈을 때,
그럼에도 그 장벽을 다시 매워야만 하는 그 오묘한 감정을 아시나요.
얼마 전 영화를 찍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준비한 졸업영화를 찍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정말로.
온몸의 피가 쌩쌩 돌아가는 그런 느낌.
금연을 어기고 담배에 손을 댄 흡연자,
다짐을 어기고 영화에 발을 딛은 나 (물론 졸업하려면 해야만 했지만).
담배가 머릿속을 다시 가득 매우겠죠.
제 머리 속도 영화 생각으로 가득 차는 듯합니다.
물론 금연을 어길 생각도 없고, 영화로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담배를 견뎌낼 건강도, 영화라는 꿈을 이어갈 재능도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그랬죠. 세상에 금연이라는 건 없고, 참는 일 밖에 없다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영화도 제게 그러할 듯합니다.
내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영화는 관심도 안 가졌으면 합니다.
남은 이번 생은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참아보렵니다.
p.s.
원래 이번 영화 편집도 다 끝나고 영화제 출품 시도도 다 끝났을 때 할까 했던 이야기였는데,
금연도 주변 사람들한테 금연 사실을 말하는 게 효과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