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인 스웨덴(feat. 치기공사)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가는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빠른 업무 습득력은 개인의 시간을 잡아먹고 성장한다. 업무 내 시간은 업무를 위해서 업무 외 시간은 능력 향상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치지 말자,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티듯 살아내는 시간들.
기공사로서 첫 2주는 모든 게 엉망이었다. 캐드로 디자인된 splint를 환자의 치아에 맞게 교합을 맞추고 적당한 텐션으로 탈착 되도록 제작하는 게 나의 업무인데 왜인지 마지막에 항상 너무 헐거워져서 이중으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 시간도 두 배로 걸리고 힘도 두 배로 들었다.
첫 한두 달은 한드레다레(handledare), 즉 사수에게 일을 배우는 기간이었지만 내가 투입된 기간이 절묘하게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일이 미친 듯이 몰아치던 때라 모두가 너무 바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기에 엉덩이로 버텼다. 늦어도 5시엔 모두 퇴근을 했고 혼자 남는 시간이 많았다. 해보고 또 해보고… 역시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었다. 3주째가 되면서 서서히 나아졌고 한 달이 지났을 때는 거의 모든 결과물이 수정 없이 환자에게 배달됐다. 뿌듯했다. 나는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모두들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는 동료들의 음성에 염려가 묻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리나,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해?"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카리나에게 물었다. 40년 넘게 치기공사로 일을 해온 베테랑이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혹은 질문을 기다린 사람처럼, "응"하고 대답했다. 카리나의 말을 요약하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 일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 건강이 염려되는 사람... 나는 그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렇구나. 그녀는 그렇게 40년 넘게 지치지 않게 일하고 나머지 에너지를 자신을 위해 쓰고 있었구나. 지쳐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일에 지쳐서 잠들지 않고 그녀의 저녁과 주말은 가족들과 생생하게 살아있었구나.
늘 생각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한국에서 꿈꾸던 일을 10년을 하고 그만둔 이유도 지침이었다. 미련 없이 그 일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간 동안 모든 걸 갈아 넣었기 때문에 뿌듯했고 반면에 모든 시간이 그것뿐이어서 너무 피곤했다.
언어의 한계,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들보다 더 빨리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빠르게… 늘 빨랐던 세상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빠름은 능력이고 최소한의 무기다. 그런 내게 카리나는 속도보다 중요한 건 ‘쉼’이고 일보다 중요한 건 ‘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나는 다른 이들과 똑같은 동료이자 일을 배워가는 신입인데 나는 내가 세운 기준을 뛰어넘겠다고 혼자서 무던히 힘주고 있었구나… 스스로를 핸디캡 안에 가두고 있었구나… 나 애쓰고 있었구나..
애쓰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해져 보려고 한다. 몸이 기억하는 지쳐야 끝나는 직장생활 말고, 나중에 어떤 신입에게 카리나처럼 말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