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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장금 Apr 15. 2023

여행에도 핑계가 필요한가요?

촌캉스는 모르겠고, 일단 떠난 단양 여행

    때는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8월이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 무작정 '촌캉스'라는 단어에 우리 셋은 꽂혔고, 갑작스럽게 촌캉스를 즐기기 위한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자유롭지 않은 직장인들에게는 개천절 연휴가 있었던 10월 1~3일로 날짜를 정하고 여행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안동, 강릉, 목포, 네이버의 스크롤로 살펴본 곳 중에서 촌캉스를 위한 숙소 대부분은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있었다. 아니면 도저히 그 가격을 주고 가기에는 아까워 여행을 가지 않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선 곳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의 상황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외여행은 가격이 비싸고, 그렇다고 3일 연휴가 확정인 황금연휴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 같은 직장인들이라면 몇 달 전부터 이미 여행을 계획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각종 숙박 어플을 뒤져서 단양에 나름 괜찮은 펜션을 찾았다. 물론 처음에 테마로 잡았던 촌캉스와는 살짝 멀어진 느낌이긴 했지만 '여행' 자체에 의의를 두고 우린 단양을 목적지로 결정했다. 사실 여행 후보지에서 단양을 고려한 이유는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 영월로 홀로 여행을 하던 중 혼자서 즐길거기를 찾다 패러글라이딩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영월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의 발아래 있었던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한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의 성지인 단양에서도 그때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하면서 패러글라이딩은 나 이외의 친구들에게는 흥미로운 액티비티가 아님을 깨닫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Copyright 2023. 농장금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우여곡절 끝에 기차표, 펜션, 쏘카 등을 예약하고 여행 당일에 우린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연휴가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의 청량리 역에는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외에서 전 날 귀국해 제대로 피로도 풀지 못한 상태로 열차에 올랐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기대감보다는 피로도가 더 컸다. 하지만 잠깐 졸다가 깨면 옆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고, 그렇게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의 풍경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여행이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단양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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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군의 홍보글에 따르면, 단양은 지리적, 토양적, 기후적 특성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단양 육쪽마늘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할 만큼 단양에는 마늘을 활용한 음식이 정말 많았다. 단양의 마늘이 유명하단 것은 여행을 하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시장에 도착해서야 단양이 마늘의 고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점심식사를 하러 방문한 단양 구경 시장에서 먹는 첫 끼도 마늘 순댓국이었고 시장 안에 있는 가게들도 모두 마늘이 꼭 들어가 있었고, 심지어는 후식으로 먹은 아이스크림도 단양 흑마늘 아이스크림이었다. 처음에는 마늘을 갈아서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섞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알고 보니 흑마늘이 토핑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흑마늘을 토핑으로 올리는 것은 분명 신박한 아이디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번의 경험으로 만족할만한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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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로 가득한 식사와 디저트를 먹고 향한 곳은 소백산이었다. 원래는 여행의 둘째 날에 소백산을 등산하는 것으로 일정을 고려하였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일정을 수정하였고, 정말이지 둘째 날은 아침에 보슬비와 함께 하루종일 우중충한 하늘만 보고 왔다. 소백산은 약 1,400m 정도 높이의 산으로 비로봉 주변의 평탄한 능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능선을 보러 올라가는 길은 돌멩이 밭이었기 때문에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렇게 3시간 남짓 정상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의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올라오면서 흘린 땀은 평평한 능선 위에서 부는 바람들이 금세 식혀주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까지 굽이굽이 뻗은 산의 능선을 보며 조금씩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나무들을 보며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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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첫째 날은 어김없이 펜션에서 구워 먹는 바비큐로 마무리하기 위해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봤다. 나름 단양 시내에서는 큰 하나로마트였기에 없는 거 없이 다 있었지만 예산에 맞춰서 저마다의 입에 맞는 식재료를 골라야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펜션에 도착을 했고, 태양은 벌써 잘 준비를 마치고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펜션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능성이들과 그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충주호의 물길은 장관이었기에, 구름에 가려진 일몰이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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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그런 촌캉스를 생각하고 시작한 여행이긴 했지만 결론은 촌캉스는 일단 아닌 여행이었다. 하지만 촌캉스를 핑계로 이렇게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고즈넉한 곳으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러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청량리역에서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모습도, 소백산을 등산하면서 죽을 상을 했던 모습도,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예산을 맞추기 위해 아쉬워하며 물건을 내려놓는 모습도 모두 촌캉스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촌캉스를 핑계로 시작한 단양에서의 첫째 날은 삼겹살을 굽는 소리와 잔을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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