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빙수에서 카발란까지 입이 즐거운 하루
여행지에서의 매 한 끼 한 끼는 정말로 소중하다. 수 만 개의 식당 중에서도 내 입에 가장 잘 맞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은근히 리뷰 한 줄이라도 더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한 가지 불문율인 것은 아무리 맛집이라고 하더라도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이라면 뒤돌아 보지 않고 바로 포기다. 길어야 한 시간 남짓한 식사를 위해 그 이상의 시간을 길 위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잠시의 쉼도 없이 음식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 창가를 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렸기 때문에 우산을 들고 너무 멀리 나가고 싶지는 않아서 간단하게 호텔 건너편에 있었던 맥도날드를 향할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샤워를 하고 나오니 잠시 비가 멎었고, 그 짧은 시간을 틈타 부지런히 아침 식사를 먹기 위해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만이나 중국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보면, 집에서 아침을 차려 먹기보다는 가게에서 아침을 급하게 먹거나 혹은 테이크 아웃을 해 식당이나 학교에서 먹곤 한다. 아침에 진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찬을 여러 가지 차려 먹는 게 아닌 계란말이나 만두, 죽 등을 먹는다.
다행히도 호텔 주변에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아침 식사를 위한 식당이 있어,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얼른 방문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대만식 아침식사를 판매하는 곳으로 대만인은 물론이고 일본인이 특히 많이 보였는데, 메뉴가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도 꽤나 자주 찾는 곳이었던 것 같았다. 특히 아침부터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는 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따뜻한 두유와 함께 먹다 보니 그렇게 느끼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배부른 아침 식사 후에는 또 다른 브런치와 놓칠 수 없는 빙수 타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브런치의 경우는 한국에서도 흔히 접해볼 수 있는 메뉴였기에 그렇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대만을 빼놓고는 망고 빙수를 논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망고 빙수의 맛은 일품이기 때문에 어김없이 이번에도 망고 빙수를 후식으로 먹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브런치를 먹었던 곳 주변에는 다른 카페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Shuanglian역 주변으로 10분 정도를 걸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딱히 빙수집이 많은 것 같지가 않아서 테이블이 4개 정도밖에 없었던 작은 디저트 가게인 HuoShih로 갔다. 들어갔을 때는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어서 혹여나 디저트의 맛이 아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알고 보니 모두 점심을 먹고 있던 시간이었기에 디저트 카페가 한산했던 것이었다.
카페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으며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카페에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빙수를 먹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가게에서 2인용 빙수를 팔고, 정서상 혼자서 빙수를 먹는 게 잘 상상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일전에 대만인에 대해서 읽었던 책에서 대만인의 경우는 혼자서 식사하고 생활하는 게 익숙한 문화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새삼 신기했고, 그렇게 신기해하는 나의 모습을 대만인 친구도 신기해했다.
브런치와 빙수를 먹은 게 소화가 되기도 전에 어느덧 해가 저물어져 갔기에 다시금 저녁 식사를 위한 식당을 찾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도 호텔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이기는 했지만 타이베이의 장점은 도시 곳곳이 대중교통으로 잘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로 자체도 서울과 같이 구불구불하지 않고 직선으로 쭉쭉 뻗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도 수시로 지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이다.
저녁은 정갈한 가정식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그도 그럴법한 게 타이베이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모두 화려하였지만 그만큼 기름에도 많이 절여진 음식이었기 때문에 저녁만큼은 좀 더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특히 식당 내부도 주말 저녁 시간 때문이었는지 사람도 너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식사하기 편리했다.
하지만 식당은 편리성과 음식의 장식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맛이 중요한데, 이곳 North House는 삼박자가 모두 골고루 갖추어진 곳이었다. 대만인 친구 말로는 평소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웨이팅이 있어서 이렇게 한가할 때 와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특히 저녁 시간 때, 웨이팅이 없다 보니 좀 더 천천히 여유롭게 맛있는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유명한 대만산 위스키인 카발란 (Kavalan)을 즐길 수 있는 카발란 바에 가기로 했다. 사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위스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카발란이 대만에서 유명하기 때문에 위스키 마니아들에게는 꼭 한 번 방문해야 하는 성지 같은 곳이라길래 궁금해서 그만 덜컥 예약해 버렸다.
이곳은 예약할 때는 별도의 예약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입장하고 난 뒤에는 1인당 최소 1,000대만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었다. 한화로 약 4만 원 초반의 금액인데, 서울에서도 이름 있는 바에 가서 한두 잔 정도만 마시면 금방 채워질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에 가격적으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발란의 명성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함께 간 친구가 대부분의 술을 마셨고, 나는 옆에서 간접 체험 정도를 하는 식으로 카발란 바에서 시간을 보냈다. 카발란의 경우 도수가 50도 후반인 위스키이기 때문에 위스키 중에서도 독한 술이기에 샷 잔에 풍겨오는 알코올의 냄새만으로도 이미 취하는 듯했다. 호기심에 샷잔에 혓바닥을 살짝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도 침과 함께 카발란의 강렬한 뜨거움이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카발란바의 또 하나 매력포인트는 바로 칵테일이었다. 이곳의 칵테일의 작명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간결했다. 특히 칵테일의 이름과 이름에서 연상될 수 있는 이미지를 메뉴판에 함께 부착했기 때문에 좀 더 맛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용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병에 20~30만 원 하는 술을 가지고 만든 칵테일이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마치 공짜술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위장이 쉴틈도 없이 음식이 입을 통해 들어갔다.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조금은 무리해서 먹은 탓도 있었겠지만 우선 타이베이에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았던 탓도 있었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아침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배가 불렀던 상태였지만 공항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딘타이펑 (Din Tai Fung)에 들려 샤오롱바오 (Xiao Long Bao)까지 챙겨 먹었을 정도였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정말 작지만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들과 또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들 때문에 언제 가도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나라인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대만이었기에 짧은 방문이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코로나 때문에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좀 더 자주 와서 눈과 입이 즐거운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