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할 때는 보통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시간 단위로 관광지 방문 계획을 세우고 유명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것보다는 걸어 다니다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뉴델리에 혼자 머물렀던 24시간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출발하는 친구들과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결국 내가 제일 먼저 뉴델리에 도착했고, 좋으나 싫으나 어쩔 수 없이 혼자서 24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하루쯤이야, 금방 가겠지. 무슨 계획이 필요해.' 하며, 나는 핸드폰 심카드조차 사지 않았다.
내가 머무를 숙소는 지도상에서는 뉴델리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걸어서 숙소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뉴델리역을 나오자마자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였다. 저녁 늦은 시간의 뉴델리역에는 나와 같은 여행객들을 태우기 위해 20~30명의 툭툭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나 앞뒤로 가방을 멘 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은 나를 둘러싸면서 어디로 갈지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느껴보는 공포감이었다. 무엇보다도 혹시 이렇게 정신없게 만든 다음에 내 지갑이나 핸드폰을 가져가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니까 더욱 긴장하게 되면서 내 가방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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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툭툭 기사들을 뒤로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걸어가려 하였지만 뉴델리의 밤은 너무나도 어두웠고, 인터넷이 없는 구글맵은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구글맵을 다운로드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지도만 다운로드하고 심카드를 사지 않은 나의 선택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무엇보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좌우 앞뒤를 두리번거리며 신경을 잔뜩 쓰면서 걸어 다니다 보니 머리까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뉴델리역으로 돌아가서 툭툭을 이용하자니 기사들이 2배, 3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다고 하니 이럴 바에는 다시 공항에 돌아가서 공항에서 자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얼마 가지 않아 교통 경찰관이 보였고, 그에게 내가 가야 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알려주니 툭툭 기사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지나가던 툭툭을 잡아주기까지 했다. 만약 그때 경찰관을 만나지 않았다면 뉴델리에서의 첫날밤은 게스트하우스의 침대가 아닌 공항의딱딱한 의자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1시간을 넘게 헤매고서야 어렵사리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니 지난 긴장감이 사르륵 녹으면서 배가 고파졌다. 구글 지도를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사기 위해서 나갔다 왔지만 편의점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전이었다.
툭툭을 타고 지나가는 길에서의 뉴델리는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고, 이방인에게 뉴델리의 밤은 친절함을 찾기에는 어려웠다. 지나오면서 보았던 거리는 어떤 이방인에게는 침대가 되는 곳이었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통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고픔을 잊을 만큼 졸음이 쏟아졌고, 뉴델리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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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뉴델리에서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인지를 검색해보고 그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몇 군데를 추려서 반나절 일정을 시작했다. 사실 전날 저녁에 느낀 공포감 때문에 차라리 게스트하우스에 하루 종일 앉아 있을까도 고민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저녁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무턱대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나오자마자 나는 소위 말하는 인도의 소매치기범을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옆에 와서 말을 걸으며, 내 옆이 붙어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려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난 대답도 안하고 앞만 보고 걷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 남자가 사라졌다. 그 순간 이게 바로 소매치기 수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고, 나는 지갑, 여권, 핸드폰이 가방 안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안도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그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행히도 난 바지 주머니에 귀중품을 넣지도 않았고 가방도 앞으로 메고 다녔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붉은 요새 (Red Fort)라는 곳이었다. 붉은 요새는 인도에서 가장 번영했던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건축한 요새로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요새 안에서는 내 안전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보안요원이 있었던 만큼 보다 더 마음 편하게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다른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것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일부 구역은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군데군데 출입이 어려운 곳들과 철근 골조들이 세워져 있어 요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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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요새를 나와서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연꽃 사원 (Lotus Temple)이었다. 사원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인 연꽃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만들어진 사원으로 사진으로 아침에 관광지를 검색하던 중 사원을 처음 보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꽃 사원은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보니 붉은 요새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걷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기에 나는 툭툭이 아닌 지하철을 타보기로 결정하였다. 지하철은 생각 이상으로 쾌적했지만 문제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연꽃 사원을 가는 길이었다. 휴대폰 심카드를 구매하지 않은 나에게 데이터가 없이 지도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게 난 또다시 길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길 위에서 헤매며, 겨우 도착한 연꽃 사원은 알고 보니 6시가 아닌 5시까지만 운영을 한다고는 하여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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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공항 주변의 호텔로 이동하였다. 뉴델리에서 반나절은 나에게 하루 24시간 이상의 시간처럼 따분했고, 긴장감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매 순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조차도 가방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같이 가방을 품에 껴안고 밥을 먹을 정도였다.
사실 뉴델리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접했던 정보들이 뉴델리는 위험한 곳이라고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은 긴장감이 역력한 불쌍한 한국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내가 뉴델리에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뉴델리에 대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판공초를 보시 위해 레 (Leh)로 친구들과 함께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