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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랩네뷸라 Jan 11. 2022

<블라인드>, 너만을 바라보는 맹인

카이와 게르다의 가슴을 통한, 눈 먼 사랑 이야기

블라인드 (2007)


 어릴 때 읽었던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떠올랐다. 영화로도 봤었는데 내 기억 저편에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카이와 게르다의 사랑이 생각났다.


 모든 물체를 추하게 보여주는 악마의 거울. 거울이 깨지면서 파편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힌다. 영화에서 카이는 한 명이 아니다. 카이는 마리이자 루벤이다. 루벤은 눈에, 마리는 심장에 거울 조각이 박혀 몸도, 마음도 춥고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는다. 마리는 심연에 갇힌 루벤을 시각을 초월한 사랑을 통해 따뜻한 양지로 끌어올려준다.


 눈의 여왕에서 게르다는 봄이 되자 카이를 찾아 나선다. 영화도 소름 돋을 정도로 잘 그려냈다. 춥디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이 되어 마리를 찾아나서는 루벤. 그러나 마리는 카이와 같이 두텁게 얼어있었다. 마리를 만났던 날은, 봄이었음에도 눈이 내리는 한겨울 같았다. 카이였던 루벤은 게르다가 되어 얼어있던 마리를 녹이려 한다. 게르다가 카이의 얼음을 녹였는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게르다가 카이를 녹이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눈까지 포기하며 카이를 구하고 싶어했다는 사실은 전율이 돋았다. 서로가 카이이자, 게르다였던 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은 큰 여운을 주었다.


 공교롭게도 스핏스베르겐 섬은 두 사람에게 공통된 장소였다. 도서관과 서재라는 공통된 공간은, 서로의 아픔을 초월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며 서로를 알게된다. 눈의 여왕에서 게르다는 순록을 타고, 영화에서 마리는 책을 타고 카이에게 다가간다.


 나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면서까지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루벤은 눈을 뜨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원했다. 아이러니하게 루벤이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의사의 얼굴이며, 죽은 엄마의 시신이었다. 루벤은 과연 눈을 뜨기 원했을까? 눈을 감은 상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준 마리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눈을 뜬다는 행위 자체가, 정말 루벤에게 소중한 것이었을까?



첫 사랑은 어설프기 마련이야. 또 이루어지지도 않아.

 어설픈 첫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는 첫 사랑도 싫다.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소중한 첫 사랑은 어설프지도, 이루어지지 않게 하지도 않을 거다. 때론 카이처럼, 때론 게르다처럼 서로의 약점을 채워가는 봄처럼 따뜻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랑을 하고싶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복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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