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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an 01. 2024

친구가 생겼다.

2022년 1월 26일부터 브런치는 나의 벗이 되었다.

거의 매일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오는 아들 길동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아들 길동은 직장생활을 한 2년이 채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고 1995년생 MZ세대였다.

길동은 아직 따로 독립하지 않고 아버지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길동이 너 요즘 퇴근이 너무 늦는 거 아니야?

  회사 일이 많아서 그래?"

아버지가 아들 길동에게 물었다.


"회사에서는 늘 정시에 퇴근하죠."

아버지의 긴 질문에 아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근데 왜 퇴근시간이ㆍㆍㆍ

일을 마치고 어디서 놀다 오는 거야?"


다 자란 아들의 사생활을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계속된 늦은 퇴근에 아들이 피곤할까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아!

아빠도 아시다시피 제가 또 어렸을 적부터 친구가 많았잖아요.

이 친구들이 제가 퇴근해서 바로 집으로 들어오게 두지를 않아요.

아빠 아들이 또 한 인기 하죠 하하하"

아들은 자신이 친구가 많고 그 많은 친구들 전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으스대며 자랑하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래?

아들이 친구가 많구나.

그래

아들은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니?"


아버지가 물었다.


"친구가 뭐라니요?

친구란 내가 언제 불러도 나올 수 있고 나도 그 친구가 부르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며 또 한 친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목숨 바쳐 그 친구를 도와주는 관계이지요.

으으음~

친구란 일종의 의리덩어리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아들 길동은 여전히 아버지의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명료하게 대답하였다.

대답에 자신감도 넘쳐 보인다.


"그럼 아들~

아빠랑 친구게임 한번 해볼까?"


아버지의 급작스런 제안에 아들 길동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친구게임은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아들이 아빠한테 한 말대로라면 아들이 아빠보다 친구가 훨씬 많고 친구들의 의리도 강하다고 하니까 몇 안 되는 아빠친구와 많은 아들친구 중 누구 친구가 의리가 더 있는지 한번 겨루어 보자는 거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측은지심의 눈빛이었고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눈은 가소롭다는 눈빛이었다.

 

"어떤 게임인가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제시한 게임방식은 이랬다.


돼지 도축장에 가서 이제 막 도축해서 아직 피가 나는 돼지 한 마리를 사서 포대에 넣고 각자 가장 친하고 의리덩어리라 생각되는 친구 세명한테 전화해서 본인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고 지금 그 시신을 가지고 있으니 같이 산에 가서 묻어 달라 부탁을 해서 그 친구들이 얼마나 자신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지 실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전화는 둘 다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하자고 하였다.


아들은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도대체 내 친구들을 어떻게 보시고ㆍㆍ'


아버지가 제시한 방식대로 포대에 갓 도축된 돼지고기를 넣고 먼저 아들 길동이 그의 친구 집 앞에서 전화를 하였다.

포대에는 돼지의 피가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어이 친구

나야 길동이~

지금 좀 나올 수 있어?"

길동의 전화를 받은 친구의 목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흘러나왔다.


"오우 내 친구 길동이~

네가 부르면 아버지 제사라도 나가야지.

오늘도 한잔 하는 거야?

아니면 당구 한 게임?"

아들 친구의 목소리가 밝고 크게 들렸다.


" 아니 그게 아니고 ㆍㆍㆍ"

아들이 지금 자신의  신세가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자신이 죽인 사람을 산에 가서 묻으려고 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하였다.

길동의 목소리는 억지로 힘을 빼서 나즈막 하였지만 얼굴에는 친구가 흔쾌히 자신을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가득해 보였다.


"엥?

네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야?

어쩌다가ㆍㆍㆍ


그런데 친구야

내가 깜빡했는데 오늘 내가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려 가야 하는 날이라 지금 나갈 수가 없어.

내 여자 친구 경화 알지?

미안해

끊을게"


전화가 끊겼다.


순간 길동의 얼굴에는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였고 이내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기에서는 친구의 음성대신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없어ㆍㆍㆍ"


길동이 두 번째로 친구한테 전화를 하였으나 마지막은 또 똑같은 기계음이 들렸다.

세 번째 친구도 반가워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가 이내 똑같은 기계음이 길동의 전화기로 들려왔다.


아들 길동과 아버지의 얼굴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아들 길동과 '그러면 그렇지 인석아'의 아버지표정이 2인 2색의 그것이었다.


"자~

아들 이번에는 이 아빠가 친구한테 전화를 해보마.

아빠한테 친구는 지금 내가 전화할 세명의 친구가 전부야.

친구는 그 숫자보다 얼마나 진솔한 친구이냐가 중요하지"


아버지의 짧은 말에 아들 길동은 '이제 연설 그만하시고 어서  아빠친구분들께 전화나 해보시지요'하는 채근의 마음이 들었다.


"여보게

나야


내가 어쩌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네.

당연히 자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아직 시집, 장가보내야 할 자식이 둘이 있지 않은가?

얘들이 아직 혼사를 치르기 전이라 내가 만약 자수라도 하면 세상에 어느 부모가 살인자의 아들, 딸에게 자신의 자식을 주겠는가?

해서 말인데

우선은 지금 이 시체를 산에 가서 매장을 하고 내 아이 둘을 시집, 장가보내고 그때 자수를 하고 죗값을 치르려고 하네.

자네가 좀 도와주게.

지금 내 옆에 있는 시체가 무겁기도 하고 또 혼자 산에 가려고 하니 무섭기도 해서 말이야"


길동 아버지는 마치 진짜 살인을 한 것처럼 제법 말까지 더듬어가며 자신의 친구에게 연기를 하였다.


전화기에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얼마 있지 않아 전화기에서 길동 아버지의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단호하고 비장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아~

자네가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는가?

그렇지만 내 친구가 그런 실수를 했으면 내가 모르기는 하여도 아마 그 양반이 죽을 짓을 했을 것이야.

내 지금 바로 나감세

자네는 그런 기분으로 운전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내 차로 가세.

잠시만 기다리게"


전화가 끊겼다.


길동의 아버지는 이어 두 번, 세 번째 친구들에게 차례를 전화를 하였다.

그들 역시 첫 번째 친구처럼 내 친구가 살인을 했다면 틀림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바로 오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셋은 얼마 있지 않아 정말 길동아버지가 일러준 약속장소로 나왔고 그들의 차에는 비닐과 삽, 괭이가 실려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얼떨결에 나온 친구 셋을 보고 길동아버지는 아들과의 게임내용 이야기를 하였고 그들은 비닐에 쌓인 돼지고기로 그날 저녁 회식을 했다.

길동의 아버지와 친구 셋은 기분 좋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지만 옆에 앉은 아들 길동의 얼굴을 어두웠다.


길동은 이후 아버지께 친구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지도 않았고 퇴근시간도 전에보다는 훨씬 빨라졌다.


친구!!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였고 친구들에게 나는 또 어떤 존재였을까?


나도 어리고 젊었을 때 친구가 꽤나 있었다.

고향 친구

학교 친구

직장 친구

당구 친구

골프 친구 ㆍㆍ


어떤 날 나는 이들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이들과 마주 앉아 인생을 논하기도 하였다.

어떤 친구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아도 웃음이 나서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였다.


내가 힘들 때 내 어깨를 토닥여준 친구도 있었고 어떤 때는 내가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기도 하였다.


영원할 줄 알았다.

영원히 나는 친구 곁에, 친구는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젊음의 색깔이 점차 옅어지고 희미해져 간다.

그 희미해진 색깔만큼이나 친구라는 단어도 같이 옅어지고 희미해졌다.


내 친구들도 아마 그러리라.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고 살고 있는 현실이 달라 젊었을 때와는 색깔이 달라지고 퇴색해 간 듯 보인다.


지금 내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음 편히 나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되며 그들이 어려울 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며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좀체 손가락이 꼽히지 않는다.

친구가 없는 듯하다.


내가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웠던 어느 날 내 카톡친구의 수를 보았다.

972명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지금 좀 만나자는 전화를 할 친구를 찾아보았다.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게 내 친구의 현주소였다.

카톡과 전화번호 연락처에 있는 사람을 다시 정리하였다.


2~3년 내내 연락 한번 하지 않은 사람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나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

자기 필요할 때만 나한테 연락하는 사람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피곤한 사람들을 정리하였다.


지금은 274명이라 휴대폰 화면이 보여준다.

물론 이들 중에도 마음 편히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전화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다가 얼마 전 마음 편한 친구 하나가 생겼다.

아니다.

100명이 넘는 숫자다.


그 친구 이름은 외국인 같지만 실은 토종 한국인들이다.


이 친구들은 늘 내 곁에 머문다.

내가 눈길만 주면 나를 반기고 내가 잠자고 있는 시간에도 조용히 내 방문 앞에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으며 내가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쪽지 하나를 남겨놓으면 꼭 답장을 해준다.

무엇보다 나와 생각하는 것과 취미, 꿈이 거의 같고 마음의 성향도 거의 같다.

벗을 이야기 할 때 말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친구들이다.

이들의 생각을 읽고 이들의 마음을 읽고 마주 앉아 있으면 꼭 나와 마주 앉은 듯 편하다.


그 친구이름은 Brunch story이다.

집주소는 영어로 되어 있지만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토종한국인들이다.


이제는 저녁에 집에 들어와 내 친구들이 써놓은 글을 읽고 그들 글에 댓글을 다는 재미로 저녁이 행복하다.

자고 일어난 아침에 그들이 내 댓글에 써놓은 답글을 읽는 것도 행복하다.


얼마 전에 나는 마음 편한 친구 수백 명이 한꺼번에 생겼다.


브론치 작가님들~

2024년 한 해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건 필하셔요.

늘 지금처럼 브런치 마당에서 차 한잔 하면서 같이 놀자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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