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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an 23. 2024

36.5도

우리가 코로나19 때 수없이 봐왔던 체온계이다.

사람이 사각의 링 위에 마주 서있다.

멀리서 보면 둘은 복서(boxer)로 보이고 그 둘은 지금 복싱경기를 위해 링 위에 올려진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다가서 가까이에서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보인다.


우선 복싱경기는 체급이 같은 선수끼리 시합을 해야 하는데 둘은 겉모습부터가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인다.


한 사람은 운동으로 다져진 듯 체격이 단단하고 몹집이 꽤 큰 헤비급선수로 보이고 그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매우 호전적으로 보인다.


아직 경기 시작종(鐘)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그는 끼고 있는 글로버를 상대의 얼굴에 툭툭 치며 잽을 날리고 반대편 팔을 빙빙 돌리며 당장이라도 때릴 듯 맞은편 사람을 위협하였다.

그럴 때마다 배에 복근이 아래위로 움직였고 양팔의 힘줄도 커졌다 작아졌다 하였다.


그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있어 생김새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매우 험상궂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와 마주한 사람은 체격이 너무나 왜소하고 말라 보였다.

얼굴도 너무나 순하게 보여 꼭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보이고 그는 상대와 눈조차도 맞추지도 못하고 계속 링의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복장은 운동복도 아니고 집에서 입던 평상복이었는 데다 손에는 글러브조차 끼워져 있지 않았다.


가끔 링의 바닥을 벗어난 그의 눈은 자신이 왜 이곳에 서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체격이 좋은 선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심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는 둘을 불러 경기규칙을 알려주는 등 복싱경기 심판이 해야 할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심판이 파이팅 사인을 주고 둘의 사이에서 빠졌다.

심판이 물러나자마자 헤비급선수는 우선 체격이 작은 선수의 얼굴에 가벼운 잽을 날렸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잽인데도 한방에 라이크급 선수의 코에서 피가 나더니 연이은 잽에 눈에 멍이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헤비급선수는 계속해서 레프트, 라이트 훅을 날리고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경기가 시작되고 1분도 되지 않아 라이크급 선수는 링에서 다운되었다.


심판이 카운트를 한다.

원, 투, 쓰리, 포.......

세븐까지 카운트되는 소리를 듣고 라이트급 선수가 억지로 일어서기는 하였지만 그의 얼굴은 유혈이 낭자하였고 억지로 뜬 눈으로 심판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었다.


라이트급선수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그대로 누워 심판의 카운트 소리를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심판의 입에서 텐(ten)이라는 소리가 나면 그것은 경기의 패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판이 다시 둘에게 파이팅 사인을 주고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헤비급선수의 공격이 더 거세졌고 주먹의 세기는 조금 전보다 더 강해지고 더 포악해졌다.

라이트급 선수는 자신의 양팔을 억지로 올려 얼굴만을 가리고 헤비급선수의 펀치를 온몸으로 견디며 서있었다.

억지로 버티고 서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저 기적처럼 헤비급선수의 마음에 자비심이 일어 공격을 멈추어 주던지 아니면 3분의 시간이 경과하여 지금 라운드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헤비급 선수의 자비는 없었다.


땡!!

대신 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1분간은 쉴 수 있었다.


2019년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우한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서서히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서 우리에게 가볍게 잽을 날렸다.

우리는 그때 글로버도 끼지 않았고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권투경기를 하는 사각의 링인지 조차도 잘 몰랐다.


우리에게 바이러스라는 선수가 왔으니 이렇게 대비해라, 저렇게 대비해라 하는 대비책을 알려주는 심판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바이러스 선수가 날리는 펀치를 맞아가며 우리는 곧 이러다 말겠지, 이러다 곧 끝나지겠지 하며 견디고 버티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이러스 선수가 자신의 이름을 코로나19라고 개명(改名)을 하고 우리를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바이러스의 공격에 코에서 피가 나고 눈에 멍이 들었던 우리들 중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사태가 막 벌어졌다.


큰일이다.

이거 장난이 아니다.

생각하였을 때는 이미 바이러스의 덩치가 너무나 커져 있었고 그는 온 시각의 링을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코로나는 7백만 명 인류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우리나라에서만 3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생명을 데려갔다. 


전 국민 마스크 의무착용

전 국민 백신 의무접종

3인이상 집합금지

전 국민 공공시설 출입 시 체온측정


우리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하였던 기이한 현상들을 3년 동안 많이도 봐왔고 많이도 경험하였다.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나라의 거의 모든 기업, 시설들이 바이러스의 펀치에 휘청였고 급기야 그 역병은 민심까지 흉흉하게 만들었다.


1,000세대가 한 곳에서 어우러져 살고 있는 아파트에 구급차가 서고 누군가가 그 구급차에 실려가면 주민들은 그 사람이 코로나 감염자라 생각을 하고 조금 전 구급차가 섰던 그 동(棟)을 빙 들러 지나다니기도 하였고 그 가족들 보기를 마치 외계인을 보듯 하였다.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마스크로 가려졌고 그 마스크를 구하려 약국 앞은 끝이 보이지 않는 줄로 채워졌다.


그리고 출생연도를 구분하여 차례로 백신접종을 해야 했다.

그때 백신이라는 것은 원래 개발을 할 때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세심하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코로나 백신은 너무 단기간에 개발을 해서 오히려 접종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소문까지 번져 나갔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실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 중에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증상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모임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대하여 3인이상은 모이지 못하게 하여 그동안 수십 년 해왔던 개인의 모임들은 코로나 기간 3년은 할 수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아쉬워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잘 되었다며 좋아하였다.


문제는 어지간한 집합장소를 가던 체온을 재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공서 등 공공의 장소는 물론이고 식당, 카페같이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장소에 가더라도 출입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체온을 재는 장치를 해두고 고열의 사람이 그곳을 지나며 자동으로 체크하여 그 사람이 고열환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의 적정 체온이 36.5도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간과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어쩌다가 머리에 미열이라도 있을라 치면 약국에서 사 온 체온계로 수시로 체온을 재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36.5도를 기준으로 1도라도 높게 나오면 나는 안절부절, 좌불안석하였고 괜스레 어제,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매번 미열은 이내 떨어졌고 코로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보니 나는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보다 코로나에 걸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코로나는 처음 시작되었을 때보다 그 위력이 약해졌고 인류는 엔데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에둘러 코로나와의 공생을 선포하였지만 결국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코로나가 

'나 이런 존재야.

앞으로 나를 얕보지 말고 나한테 까불지도 마.

너희가 가엾어서 이쯤 하고 물러나 주는 거야'

하는 듯 보인다.


코로나 기간 동안 느낀 것이 있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몸의 체온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인간의 체온이 38.5도~39도까지 올라가면 고체온으로 구토, 오한,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세로 하루이상 방치 시 탈수등의 원인으로 자칫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하고, 또 35도 이하로 내려가면 저체온증으로 몸의 항체가 급격히 떨어져 면역력 저하로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고열 38.5도에 저열 35도를 더하면 73.5도인데 이를 2로 나누면 36.75 즉 36.5도가 된다.

과학적으로는 평균의 놀라운 힘이고 철학적으로는 창조주의 놀라운 창조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열기준과 저열 기준의 딱 중간지점인 36.5도를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정한 온도로 지정해 준 창조주이신 신의 경이로운 능력이라 말하고 싶다.

날씨가 덥거나 몸에 열이 났을 때 몸이 알아서 땀을 만들어 열을 식히게 하고 날씨가 춥거나 몸에 열이 부족하여 저체온이 되었을 때 몸이 알아서 자신에게 오한이 들게 하여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창조주의 경이로운 능력이라 말하고 싶다.


의학자들은 말한다.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몸을 항시 따뜻하게 하라고 말한다.

암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이 차가운 것이라고 말한다.


몸이 따뜻한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고

몸이 싸늘히 식어가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보니 1년이 365일이다.

365일 내 몸의 온도를 36.5도로 유지하는 노력을 하자.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은 수시로 내 몸의 체온을 check 하여 내 몸이 열을 필요로 하는지 자신의 몸에 열이 남아도는지를 알아차려서 건강을 챙기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몸의 체온이 수명을 다하여 자연스럽게 식어갈 때까지 우리 부끄럼도 없고, 후회, 미련도 없이 잘 살아가자구요.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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