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열 Jul 21. 2024

순기와 기순이

귀자(貴子)가 시집오고 석 달 후에 분녀(女)가 시집왔다.

귀자와 분녀는 같은 해, 같은 마을에 시집왔다.

귀자는 4월에 낡은 가마를 타고 시집왔고 분녀는 세간살이 짐과 함께 친정아버지가 끄는 구루마 (수레)를 타고 시집왔다.

구루마를 끄는 아버지도 늙었고 소도 늙었다.


귀자가 시집왔을 때 마을 뒷산에 창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뻐꾸기가 구성지게도 울었는데 분녀가 시집오던 날은 창꽃이 피었던 산속 깊은 곳에서 참매미들이 떼로 울음을 토해냈다.  

 

둘이 시집온 마을은 같은 성씨(姓氏)를 가진 집성촌(集姓村)이었는데 귀자와 분녀는 각각 항렬도 같고 나이도 같은 신랑을 두었다.


귀자가 분녀보다 한 살 위였지만 시집온 후 둘은 친구로 지냈다.


귀자는 늘 분녀가 고마웠다.

자신이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 데다 시집온 마을 구석구석이 낯설었고 보이는 사람까지 낯설어 자주 그 낯섦이 서러움으로 가슴에 박혀 눈물로 보낸 날들이 많았는데 얼마지 않아 분녀가 시집와서 자신과 같은 동병상련의 처지로 자신의 서러움을 많이도 나누어 가져 주었기 때문이었다.

  

분녀도 같은 이유로 귀자를 고맙게 생각하였지만

둘은 그런 마음을 서로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귀자는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분녀는 자신이 시집오기 3년 전에 혼자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홀로 된 귀자의 시어머니와 분녀의 시아버지는 둘 다 마치 자신이 홀로 된 것이 서로의 며느리 탓인 양 귀자와 분녀를 쥐잡 듯 볶았다.

그런 날 귀자는 온 집안 빨랫감을 뒤져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마을 앞 개울가로 나갔는데 꼭 그런 날 분녀도 같은 양(量)의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개울가로 왔다.

 

둘은 방망이로 들고 온 빨래를 두들겼지만 자신의 서러움을 두드렸고 각자의 고약한 시부모의 마음을 두드렸으며 남편의 무심(無心)을 두드렸다.

한참을 두들기다가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귀자와 분녀가 서로의 몸에서 태기(胎氣)를 느낀 것은 마을로 시집온 다음 해 한겨울 즈음이었다.

귀자는 엄동설한에 시원한 름이 당겼고 분녀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이내 물 한 모금을 토했다.

분녀는 입덧으로 임신 기간 내내 거의 먹지 못하였지만 시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녀를 몸종 부리 듯 부렸다.


이듬해 ~

늦가을 햇살이 마당 가득 내려앉은 날

뒤뜰에서 익은 깨를 털던 귀자가 급작스레 산기(産氣)를 느껴 일을 중단하고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낳았는데 다행히도 아들이었다.

아들을 낳은 그날은 시어머니의 패악이 없었다.


귀자가 아들을 낳고 두 시진(時辰)이 지났을 즈음에 분녀도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70이 넘은 산파가 귀자의 분만을 도왔다.

순산으로 분녀도 아들을 낳았다.

 

그날 저녁 시아버지가 분녀가 조리하고 있는 방문 앞마당에서 긴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아가, 애썼데이~

참말로 수고 했데이"

분녀는 시집오고 처음 들어보는 시아버지의 따뜻한 말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귀자와 분녀집 마당 대문똑같이 생긴 금줄에 까만 숯덩이와 고추가 달려 한 달간 있다가 금줄이 걷히고 이내 아이들의 이름을 지었다.

아이들의 아버지 둘이 같은 작명소(作名所)에서 이름을 얻어왔다.

 

아이의 이름을 지은이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시적 서당훈장을 하였던 사람이었는데 마을 아이들 이름을 전부 이 노인이 지었다.

노인은 귀자의 아들을 순기(淳基)라 지었고 분녀의 아들은 기순(基淳)이라 지었다.


둘이 태어난 날짜가 같고 시(時) 거의 같아 둘의 사주도 비슷할 거라고 노인이 말했다.

작명노인의 예언은 한참 동안 들어맞았다.


순기와 기순은 같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반(班)을 배정받았는데 둘은 같이 공부를 잘하였다.

순기가 1등을 하면 기순이 2등을 하고 다음학기에 기순이 1등을 하면 이번에는 순기가 2등을 하였다.


신기하게도 순기와 기순은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동네 아낙들은 뱃속에서 지들 애미가 친형제처럼 지내는 것을 보고 배웠다며 신기해하였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 귀자는 분녀아들을 칭찬하고 분녀는 귀자아들을 칭찬하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아들과 대등하게 겨루는 서로의 아들이 거슬렸다.


둘의 우정보다 핏줄이 우선이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면소재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둘은 1점 차이로 1등과 2등을 주고받았다.

2년 내내 그랬다.


순기와 기순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둘의  집에 찾아와 아이들을 이런 시골에서 공부시키지 말고 대도시 서울보내서 공부시키라 조언하였는데 두 집안 모두 선생님의 뜻에 따랐다.

 

시골학교에서 서울로 전학 간 순기와 기순은 처음 몇 달간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가 이내 지금껏 서울에서 공부하였던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잘 적응하고 잠시 떨어졌던 성적도 이내 전과 같이 회복하였다.

어쩌면 순기와 기순은 공부에 관한한은 천재의 소질까지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나란히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때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 하나씩을 교무실로 불러 진학에 관하여 상담하였을 때였다.

그 시절 고등학교 진학은 미리 진학 희망학교를 지정하고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통과하여만 희망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즈음 나라는 온통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급박스럽게 변해가고 있었고 어떤 어른들은 자칫 말 한마디로 불순분자로 몰려 낭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기순과 순기는 아직 나이가 어려 어른들의 세상을 잘 몰랐고 이해하지 못하였다.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은 기순은 자신은 대학을 목표로 한다며 인문계 고등학교를 희망하였다.

선생님께 진학희망 학교를 말할 때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기순보다 한참뒤에 교무실에 불려 온 순기는 똑같은 선생님의 질문에 망설임이 역력해 보였다.

생각하고 있는 학교와 갈 수밖에 없는 학교가 따로 인 듯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시선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었다.


억지로 꺼낸 말에 자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순기 성적이면 서울시내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지원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건데 왜 실업계를 희망하지?"


그렇게 물었지만 담임선생님은 순기가 인문계고등학교를 망설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안타까움도 컸다.


사실 순기네 집은 시골에서 겨우 논과 밭 몇 마지기로 가족 생계를 꾸려 나가는 가난한 집이었다.

그 논과 밭도 순기 조부가 맨몸으로 화전(火田)을 일구어 만들어진 것이라 그 가난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왔었다.


순기가 짧게 자신이 실업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였지만 담임선생님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순기 부모한테 편지를 써서 면담을 요청하였고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순기부모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집을 나서 서울로 오는데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했다.


순기 부모와 마주 앉은 담임선생님이 순기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 어머니 귀자가 눈물을 쏟았다.

아들 순기가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며 울었다.

중학생 나이에 어른이 되었다며 울었다.

 

어떻게든 순기 학비는 마련 할터이니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어달라는 귀자의 간곡함과 그런 순기에 대한 안타까운 선생님의 마음이 잘 맞아 순기의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정해졌고 선생님이 이틀 후 순기에게 부모님이 다녀가신 사실을 알렸다.


순기가 학교 장실에서 울었다.


기순의 집 형편도 순기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기순은 처음부터 인문계고등학교를 지망하였다.

선생님은 그런 기순이 살짝은 얄미웠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둘은 이후 서울에 있는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국민학교 때와 같이 전교에서 1등과 2등을 번갈아 가며 주고받았다.

귀자와 분녀는 농번기 때는 다른 사람들의 논과 밭일을 도왔고 농한기 때는 읍내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주방일을 하며 돈을 모아 아이들 등록금을 보탰다.


이후 기순과 순기는 전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하였다.

순기는 몇 번이고 대학을 가지 않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 가정에 보태겠다고 하였지만 귀자와 남편이 기를 쓰고 졸업을 시켰다.


반면 기순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주는 등록금으로 편안하게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였다.

분녀와 남편은 기순 등록금 마련 때문에 어지간히 애를 먹었다.


둘은 졸업하고 이듬해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공기업에 취업하였는데 희한하게 둘이 같은 곳에 입사하였다.

똑같이 입사합격통지서를 받아 들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운명과 사주라는 것이 있기는 있구나'하며 웃었다.


둘이 3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던 날~

각자의 자리에 근무지점과 부서가 적힌 봉투가 놓여 있었는데 순기는 본사 총무부였고 기순은 본사 전략기획부였다.

둘은 아직 총무부와 전략기획부의 역할을 잘 모르고 있었고 두 부서의 차이점도 모르고 있었다.


둘은 각자의 부서에서 일 한지 1년쯤 되었을 때 총무부는 회사의 현재를 꾸려가는 부서이고 전략기획부는 회사의 미래를 꾸려가는 부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입사 3년 만에 대리의 직함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직함은 별문제 없이 근무일수만 채우면 자동으로 주는 자리였다.


기순이 과장으로 승진하고 정확히 1년 후 순기가 과장으로 승진하였다.

기순은 입사동기들 중에서 가장 빠른 이른바 start line에서 승진하였다.


그때까지 순기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순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첫 승진이 빨라야 다음 승진도 빠를 수 있고 다음 승진이 빨라야 또 그다음 승진도 빠를 수 있다고 여기고 승진에 관한한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그것은 기순의 생각이 옳았다.

기순은 과장이 된 후 4년 만에 팀장이 되었다.


어쩌면 기순의 그런 생각은 생각만이 아니었다.

기순은 틈만 나면 같은 기업에 있는 대학, 고등학교 선배들을 찾아가 친분을 표시하였는데 기순이 만나는 동문들은 하나같이 임원들이었다.

어쩌다 그들 선배들이 순기이야기를 하면 기순은 에둘러 화젯거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 선배들의 생각이 순기에게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에도 기순의 행동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략을 계획하는 사람처럼 하였다.


반면 순기는 총무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이 그랬다.


순기에게 직장 내 학교 동문들은 그저 우연히 같은 학교, 같은 직장을 택한 사람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직장에서의 인사(人事)는 내가 한 노력과 그로 인해 이룬 성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여기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도, 학교에서도 그리 배웠다.


어쩌면 순기의 그런 생각은 철저한 이상주의적 생각이고 고등학교 때 학과로 배운 윤리시험에나 나다소 비현실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기순이 부장이 된 그 해 순기는 팀장이 되었다.

그러나 순기는 그 팀장 승진이 직장에서 마지막 승진이 되었다.


이후 기순은 부장에서 상무가 되더니 얼마지 않아 전무이사라 쓰인 책상에 앉았다.

하나 막힘없는 일사천리의 인사였다.


어느 하루~

순기 책상에 놓인 전화기가 울었다.

발신부서가 전무비서실이었는데 3일 후 이기순 전무님이 총무부를 순시하실 계획이니까 영접에 차질 없게 하라는 말만 하고 전화가 끊겼다.

준비할 브리핑 자료는 따로 순기 mail로 왔다.


3일간 총무부 직원 전부는 보고용 브리핑 자료를 만들고, 바닥을 청소하고, 닫혀 있던 케비넷 안을 쓸고 닦았다.


3일째 되던 날

총무부에 기순 전무가 들어섰다.

전무는 일렬로 도열한 직원들 앞에 서서 일일이 눈을 맞추고 악수하였다.

스무 명 남짓되는 직원들 전부가 그에게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기순 전무가 순기팀장의 손을 잡고 말했다.

"순기 팀장~

수고가 많지?

총무부가 활성이 되어야 우리 회사가 생기가 돌아.

자네 그거 알지?

계속 수고 부탁해."

하였다.


기순이 잡은 손을 맞잡은 순기가 말했다.

"예, 전무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총무부에서 3일간 준비한 전무맞이 행사에 기순은 3분을 머물고 방에서 나와 가버렸다.

애써 준비한 브리핑 자료는 아예 펴보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순기는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 앉았는데 앞에 놓인 소주잔에 순기의 눈물 몇 방울이 첨잔 되어 떨어졌다.


순기는 지금껏 자신이 철칙으로 여기며 살아온 성실(誠實)에게 배신당한 느낌이 들어 들고 있는 소주잔이 흔들렸다.

 모금으로 들이킨 소주는 하나도 쓰지 않았고 하나도 독하지도 않았다.

그냥 물이었다.


연거푸 석 잔의 잔을 우고 다시 자신의 잔을 채우려는 순기의 손을 누군가 잡았다.

그리고 보니 포장마차에 혼자 온 것이 아니었고  부장과 함께 왔었다.

부장은 순기보다 세 살이 많았다.


순기 앞에 앉은 부장이 말했다.

"이 팀장!

내가 말이야

이 나이에 나 보다 세 살이나 어린 전무 놈의 새끼한테 머리를 조아렸지만 이래 봬도 내가 사람의  전생과 미래를 좀 볼 줄 알거든."

부장의 말이 꼬부라진 혀를 통해 나왔다.


"내가 이 팀장 자네와 아침에 다녀간 그 전무 놈의 새끼 관상을 자세히 봤거든?

봤는데 말이야.

그 전무 놈의 새끼는 역설적이게도 전생에서 선업(善業)을 꽤나 많이 지었더군.

그래서 그놈이 지금까지 그 선업의 덕으로 승승장구로 나아가는 거야."


말하는 자신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순기를 본 부장은 그 눈빛이 자신의 말에 호응하는 줄 알고 더 열심히 말을 이었다.

혀는 아까보다 더 꼬였다.

"근데 이팀장 자네는 전생에서의 업(業)이 다소 밋밋했어.

악업도 그다지 없었지만 그렇다고 선업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지금 생의 자네 삶도 밋밋한거지."


부장은 마치 순기와 기순의 전생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말하였다.

어떤 때는 말을 하는 내내 눈에서 빛이 나서 듣는 순기는 '저 말이 사실일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팀장~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야.

잘 들어."

부장이 순기옆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기순전무나 순기팀장 자네나

지금까지는 자네들이 지은 전생의 업대로 살고 있지만 지금부터 자네들이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들은 또다시 자네들의 다음생을 결정할 걸세.

예를 들어 오늘 아침 기순전무처럼 전무랍시고 고향친구인 자네를 여러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쫑꾸(핀잔)를 주는 말과 행동은 다음생에서 그대로 받을 거라는 말이야."


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순기팀장 자네는 지금 전생에서 밋밋하게 지은 업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고 기순전무는 전생에서 지은 자신의 업을 하나씩 까먹으며 살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게.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아침에 한 자네의 마음고생을 이유로 다른 악업을 짓지 말게.

기순 전무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순기가 어머니 귀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무이 잘 계시지예?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지예?

이번 주말쯤에 한번 봐서 내려 갈께예."


순기의 전화기에서 귀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나는 잘 지낸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니나 밥 챙기묵고 댕기라.

그라고 주말에는 내리(내려)오지 마라.

니 피곤한데 말라꼬(뭐 하려고) 내리 올라카노?"


순기어깨가 흔들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