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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Apr 29. 2024

나의 카르마



 나는 인도에 왜 가고자 했을까. 몇 년 전 요가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을 때 요가 관련 책들을 찾아 읽다가 요가의 나라 인도에 관심이 생긴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나 불편해 보였고, 쾌적하지 못해 보였고, 위험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기회도 없었고 애써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끔 요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했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인도 요가 여행에 관한 공지를 읽게 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가슴이 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심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9박 10일의 인도 여행은 델리 공항으로 입국해 바라나시와 보드가야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델리 공항에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 여행은 인도 비자를 만들고 짐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인도로 떠나기 전, 인솔자는 짐을 간소하게 꾸리라며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으니 생필품을 많이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캐리어가 아닌 35-40리터 정도의 가벼운 배낭에 짐을 넣어 오라고 했다. 캐리어는 인도에서 끌고 다니기 힘들고 숙소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이유와 함께 남긴 인솔자의 글을 읽고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배낭도 없다. 이 여행을 위해 앞으로 잘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은 배낭부터 사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슬 귀찮은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얼마나 도로 상황이 나쁘면 캐리어를 끌 수도 없다는 것인지 상상하기 시작하니 내가 이 여행을 왜 간다고 했을까, 잠깐 후회가 밀려왔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지인이 내 사정을 듣고 감사하게도 자신의 배낭을 선뜻 빌려주었고, 배낭에 짐을 넣었다 빼었다 하며 며칠을 보냈다. 인솔자는 인도 숙소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 가져오고 다 쓰면 현지에서 사면된다고 했다. 얼마나 열악하길래 화장실에 휴지도 없을까 생각하며 두루마리 휴지의 심을 빼서 휴지를 납작하게 만들고 하나 챙겼다. 하지만 바라나시 숙소 화장실에는 휴지가 있었기에 인도에서 휴지를 살 일은 없었다.


 어느 날은 걱정이 되면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자꾸 생각났다. 후드티도 하나 가져가고, 바지도 하나 더 넣고 싶었다. 하지만 인솔자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자신은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고 여행 인솔도 해서 짐을 자주 꾸리지만 가방의 무게는 항상 5킬로가 넘은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장기 여행의 짐이 5킬로 밖에 되지 않는지 믿기지 않아 이유를 물었다. 본인은 물건도 없고 짐을 싫어하고 대부분 현지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내 배낭을 다시 봤다. 망설여지는 물건은 가져가지 않아야 한다. 후드티와 바지를 뺐다.



7킬로의 배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침낭, 물주머니, 텀블러, 여행용 드라이기, 수건, 세제 조금, 여행용 빨랫줄, 책, 노트와 펜, 충전기, 보조배터리, 옷과 양말, 방수 운동화, 슬리퍼, 커피, 칫솔, 치약, 샴푸바, 샤워타월, 화장품 몇 개를 담았다. 그리고 수화물로 보내지 않고 내가 직접 들고 기내의 선반에 실었다. 매일 속옷과 양말만 세탁했고, 가져간 옷들은 낡은 것으로 챙겨가서 인도에서 입고 그곳에 두고 왔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보드가야에서 만난 한국 수행자에게 내 옷과 텀블러, 인도의 흙탕길을 신고 다니던 신발까지 다 드렸다. 물건이 많은 내게는 한국에 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가더라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그분에게는 유용한 물건이니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날 때보다 가벼운 배낭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얇은 침낭, 따뜻한 물을 담아 보온할 수 있는 물주머니, 텀블러. 이 세 가지는 내가 정말 잘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물건이다. 델리의 숙소와 보드가야의 숙소에서 나는 침대에 내 몸을 바로 눕힐 수 없었다. 3성급 정도의 숙소로 그리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지만, 습하지 않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꿉꿉한 이불이 펼쳐진 침대의 청결도는 내 기준보다 낮았다. 침낭이 없었으면 그대로 사용했겠지만 내 침낭에서 나는 더 편하게 잘 수 있었고 아주 만족했다. 내가 여행을 갔던 2월은 인도의 추위가 물러가고 서서히 따뜻해지는 시기라고 했지만 일교차가 심했고 한밤중에는 추웠다. 인도의 숙소에는 난방 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같이 여행을 갔던 다른 사람들은 패딩을 껴입고 양말을 신고 잔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행용 전기장판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지 않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넣어 끌어안고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숙소에는 컵이 있었지만 나는 그 컵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생수를 사서 마셨고 물을 끓여 한국에서 가져간 드립백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짐은 짐이 된다. 그리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짐은 ‘카르마’인 것이다. 무거울수록 힘들어지는 것이다. 가볍게, 더 가볍게, 내가 들 수 있을 만큼만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인도 여행을 하면서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을 다 넣고 온전히 내 어깨와 등과 허리의 힘으로 메고 다녔다. 다닐만했고, 그리 무겁지 않았다. 게다가 배낭을 메고 다니는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두 손이 자유로운 장점도 컸다. 기차를 탈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오토릭샤를 탈 때도, 인도의 흙탕길을 걸을 때에도 내 짐은 내 카르마가 되어 함께 했다. 내가 멜 수 있을 만큼의 짐은, 어느새 내 일부가 되고 삶이 된 것 같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인에게 배낭을 돌려주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가볍고 튼튼하고, 마음에 드는 배낭을 발견하며 나도 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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