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오빠! 이번 학기에 바흐 평균율 1권 21번 B플랫장조(BWV866)가 과제곡으로 지정되었는데 한 번 봐줄래? 악보에 빠르기나 셈여림 페달 등 아무런 표시가 없고 이전에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막막해ㅠ
B 그런걸 전공생이 아마추어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A 그래도 오빠는 명반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런저런 연주를 많이 들어봤을 테니까 연습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B 명반이라고 하는 거는 일반인들의 기호에 따라 이름 붙여지는건데 연주자가 거기 의존하면 안되지. 더구나 음대 교수님의 과제곡이라면. . . .암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흐의 이 B플랫장조는 (분위기상 두 연인이 서로 설레는 마음으로 교감하는 듯한 느낌이 마치 베토벤 소나타 30번의 1악장의 분위기를 닮은 데다가, 화성 처리에서도 놀랄만큼 시대를 앞서간 곡인지라) 나도 아주아주 좋아하는 곡이긴 하니 서로 같이 이야기해보는 건 재미있을 거 같네. 일단 한 번 쳐 봐!
A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연주 시작)
B 워~워. 아니 왜케 빨리쳐? 너 몰래 명반들 많이 들은 것 아냐?ㅎ 그런 음반들을 들어보면 대체로 빠르게 시작하거든.
올드 스쿨의 피셔를 필두로 리히터, 굴드 등등 소위 명반의 주인공들, 그리고 좀 극단적이지만 임현정 등 연주자들은 대체로 빠른 템포를 선호하지... 해당 연주 앞부분만 짧게 한 번 들어봐~
아무튼 이 내림마장조는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임현정처럼 대체로 아주 빠르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 .그렇게 빨리 치다가도 상당수가 나중에 부점 리듬에 의한 음형 부분(아래 악보 빨간 박스 부분)은 또 폭넓은 템포로 여유있게 펼쳐서 연주한다는 거야. 왜냐? 그 부분은 아무래도 처음 빠르기로 계속 치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드는 거지 ..
A 맞어, 맞어, 사실 나도 앞 부분에서는 빠르게 치다가 그 부점 리듬 부분은 뭔가 중요한 부분 같아서 조급하게 보다는 좀 넓고 화려하게 짠, 짜잔~하고 펼쳐 연주하고 싶더라. . .
B 그럴거야 아마. . . 사실 이 부점에 의한 음형은 곡의 화성적 흐름을 주도 하는 부분이라 음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기둥 역할을 하자나 . . .
B ㅎㅎ 너도 벨소리로 해. . . 아무튼 (이야기가 갓길로 샜는데) 만약 너가 말한 그 부점 리듬 부분을 좀 큰 폭으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거기다가 맞춰서 전체 곡의 템포 설정을 하고 그것을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 . .중간에 갑자기 부점 음형 부분에서만 템포를 변경하여 느리게 하는 방식보다는. . .
A 일관성의 측면에서는 그런데, 그 부점 음형과 동일한 템포를 적용하면 앞 부분의 아르페지오나 스케일에서 맛이 잘 살지 않을 것 같은데. . .앞 부분은 뭔가 빠르게 시작해야 맛이 살지 않나 싶어서. . .ㅎㅎ
B 맛이라니? 무슨 맛을 말하는 건데?ㅎ 시작 부분 악보를 봐! 이게 아주 정교하게 구성이 되어 있거든. . . 아래 악보를 보면 8분음표에 의한 저음 성부의 움직임을(적색 부분), 고음 성부가 32분음표의 미세한 시차를 두고 따라 붙으며 따라 붙고 있지(파란색 부분)?
B 이렇게 시차를 두고 엇박으로 같이 진행되는 두 가지 다른 성부의 움직임을 분명히 부각시키되 그 두 가지 성부의 음량이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 느껴지게 연주하는 것이 중요해. . .곡이 진행하면서 곧 (아래 교차부분 연주와 같이) 그 둘이 아래와 같이 베이스 성부는 위로 올라가고, 위의 성부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합쳐지고 막 그러거든 . .
A 음. . .합시코드는 아무래도 음향 구조상 현대 피아노보다는 베이스가 좀 상대적으로 약하게 들리고, 빌헬름 켐프의 연주는 안그래도 베이스 음이 탄탄한 현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더 베이스 성부에 중점을 두고 친 것 같은데. . . 특히 켐프처럼 그렇게 치니까 곡의 분위기가 좀 많이 달라지는데?ㅎ
B 그치? 켐프의 경우는 성부간 밸런스도 좀 그렇지만 페달도 좀 과다하게 쓰는 것 같지 않냐?
A 옛날 연주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요즘 연주자들은 바흐를 칠 때는 대체로 페달을 절제하기는 해. . .
B 꼭 그럴까?^^ 오히려 요즈음 피아니스트들은 페달을 안 쓰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것 같던데? 아래 슈타트펠트도 한 번 들어봐 페달 마구 쓰고 있는거...근데 이 친구는 아까 이야기 나눈 그 부점 리듬 부분도 아주 피아니시모로 조심스럽게 쳐버리네 . . .ㅎ
B 아무튼 페달을 이렇게 과하게 쓰면 (아까 이야기한) 아래 베이스 성부 움직임에 시차를 두고 따라붙는 윗 성부의 선율의 느낌이 뚜렷이 부각되기 어려우니 이런 것 시험 때 피해야 할거야. . . 화성 흐름에 따라 적절히 페달을 사용할 경우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일반 애호가들은 약간 굴드나 튜렉 류의 터치를 선호하기는 해. . .
A 역시 거장들의 관록이 뭔가 다르긴 다르네. . .쉬프는 (시작부터 조급함이 없이) 템포의 일관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고, 니콜라예바는 조금 더 경쾌하기는 한데 템포를 상당히 많이 변화시키는 듯하네. . .특히 니콜라예바는 페달을 배제한 아티큘레이션이 상당히 특이해. . .튜렉 스타일과도 비슷한 듯하고. . .
B 사실 아티큘레이션은 특별히 악보에 표기가 없어서 연주자가 좀 더 자유롭겠지만, 베이스 라인 8분 음표가 두개씩 묶어져 있으니 너무 스타카토로 치는 것은 좀 곤란할 듯. . .
B 내 생각에는 저성부는 위의 펠츠만처럼 그냥 하나하나 스타카토로 치기 보다는, 논레가토로 하되 둘씩 서로 대조가 되도록 묶어 표현하는 것이 어떨지?
A 논 레가토로 두 음씩 서로 대조되도록이라. . .말은 그대로 연주에서는 생각보다 표현이 쉽지 않겠는데?
B 단, 고성부 라인(32분음표)는 음가상 스타카토 느낌이 나는 것은 불가피해보이기는 한데, 아닌가?
A 그럼 32분음표들 가운데 성부 선율선을 이끄는 가운데 32분음표를 다른 32분음표들보다 부각시키는 훈련이 좀 필요할 것 같네. . .어렵다ㅠ
B 그리고 아티큘레이션도 그렇지만 부점 리듬 음형이 등장한 이후 처음에는 하행 스케일, 그리고 두번째 부점 음형 이후에는 상행 스케일이 따르자나. . .그 때도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하행 스케일은 끝에서 약간의 가속을, 상행 스케일의 경우 오히려 끝에서 약간 느려지는 등의 처리도 음악적 느낌을 살리는 데에 중요한 것 같아보여 . . .
A 음을 아래로 허무는 것은 쉽지만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은 어렵다. . .뭐 이런 느낌인가?ㅎ
B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사실 시험 과제곡이라고 해도 이런 스케일은 화려한 현악기처럼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연주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길다란 채찍을 잡고 공중에 휘리릭 하고 채찍을 뿌리는 느낌을 상상하곤 하는데. . .ㅎㅎ 아무튼 (아래 연주처럼) 부점 음형을 토대로 한 음악적 흐름이 단절되지 않을 정도로 중간 중간에 여백을 주어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 . .
B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감상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을 말해보자면. .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아래 악보의 박스 부분의 처리인데, 박스 처리 부분 맨앞의 32분음들이 단순한 스케일이라기 보다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8분음표에 의한 음형을 축약한듯한) 멜로디이거든. . .그래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느낌이 충분히 살도록 약간은 템포를 떨어뜨리면서 강조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 .이부분은 나콜라예바 연주가 참 잘 처리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