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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y 10. 2023

개미와 베짱이

21세기 엄마 개미의 하루 <개미이미지_픽사베이>

아부지왈

"자식 농사가 젤 중헌거야. 헛짓하지 말고 애들 잘 키워라."

묻고 싶었다. 

(깨춤을 추며) "그래서, 아부지는 자식 농사 잘 지으셨고?"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낳았지만, 내가 아닌 생명체에게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낀다. 

어느 때는 (특히 코 잘 때)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고

어느 때는 ...... 암튼 미칠 것 같다. 


둘째는 요즘 응석이 늘었다.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라 우리집 공식 '귀염둥이'로 있는 사랑 없는 사랑 다 받고 자랐는데,

그 아이도 성장통을 겪는 것인지, 

요즘 아주 '싫어, 내 맘대로 할거야' 시즌 클라이막스를 달리고 있다.


눈뜨면 "엄마 엄마" 하며 부비부비 하던 귀염둥이가

인상 쓰고 "나 오늘 유치원 가?"라며(가기 싫다는 뜻이다. 준비 되었냐는 뜻이기도 하다)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말도 안되는 땡깡을 부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인가보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지금도 꿈을 꾼다.

꿈꿀 시간이 많지는 않다. 

아니다, 꿈을 꿀 여력이 없는건가.


나의 하루는,

6시에 일어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애들 등교 등원 준비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이것저것 하다가 학교 후문이 닫히기 전 1호를 겨우 들여 보낸다. 

다음은 2호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롯이 혼자가 된 시간. 

집안은 난장판. 엉망진창이다. 

옷이며 장난감을 주워담고,

세탁기를 돌리고,

그들이 남긴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남긴 밥을 버리기는 아깝다.)

식사를 하고 나면 그릇들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에 물을 뿌리고 한다.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세기가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바쁜가?

왜냐하면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청소기를 돌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빨래는.... 개야 한다. 이건 사람이 해야 한다.

빨래는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 오롯이 내 몫이라는 뜻이다. 

이틀에 한번은 세탁을 하는데, 빨래 개기를 몇 번만 미루면 거대한 산이 생긴다. 

산이 높아질수록 식구들의 원성은 높아진다. 

엄마 수건이 없어, 팬티가 없어, 바지가 없어, 양말이 없어. 

미루고 미루다 안되겠다 싶어질때면, (아니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빨래를 갤 사람이 없구나, 라는 걸 확신(?)할 때면) 드디어 마음을 잡고 빨래를 마주하고 앉아 개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식이었다. 

나는 뭔가 준비하고 대비하지 못했다. 

닥쳐야했다. 시험도 코앞에 닥쳐야 책을 펴고

마감도 닥쳐야 하고(그나마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일은 어떻게든 완료했다)

"그래도 빵꾸는 안냈다"로 속삭였지만

한켠에는 왜 난 늘 이따위일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베짱이인가?

개미는 아닌데 개미처럼 살고,

베짱이 같은데 베짱이처럼 살지는 못하네?


나는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 룰루랄라

걱정 근심 없이 그저 룰루랄라 

오늘 하루 행복하게.


내가 어릴 때 <개미와 베짱이>는 '열심히 악착같이 일한 개미는 잘 먹고 잘 살고

맨날 쳐 놀던 베짱이는 망했다' 라는 스토리였는데, 

'뼈빠지게 일한 개미는 병나고

베짱이는 음반 대박나서 평생 놀고 먹었다' 라고 바뀐 이야기를 들었다.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뚜껑이 열린다. 

아. 새끼들이 집이 쓰레기통인줄 아나. 

바닥에 자꾸 쓰레기를 버린다. 


1호 방은 눈 뜨고는 .....


밥상 위는... 안타깝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기껏 차려줬더니 새끼들은 몇 술 먹고 갔다. 

(저거 또 다 내가 먹어야 하나, 

매일 고민하지만 결국 내가 먹는다.)

그래도 남편의 깨끗한 밥그릇에 위로가 된다. 


남편 책상 위에 한 삼일쯤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컵은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새 책상이랑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거냐. 떨어져.


대망의 화장실. 

와씨. 찌룽내. 

아들들아 대장님도 앉아서 누신다. 너네도 앉아 눠라. 


환기를 하고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 내 얼굴을 봤는데

놀랐다. 

무표정. 생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듯한 표정.

이게 내 얼굴이라니. 

억지로라도 입끝에 힘을 주고 쫙 늘린다. 

특히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할 때(아이들은 잔소리라고 한다)는 꼭 해줘야 하는 얼굴 운동이다. 

이걸 하면 굳은 표정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것 같다.

 

청소를 하고 주방으로 넘어오면

설거지거리를 정리하고 식세기 이모님께 맡긴다. 

그리고 빨래감 확인을 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마지막 산이 빨래산인데,

그 어떤 '악'산 보다 험한 산이다. 


이렇게 집안일을 마치면 색깔도 고운 슈프림골드 커피믹스를 한잔 탄다.

엄마집에서 한잔 마셔봤는데 볼륨(?)이 다른 달콤함에 당장 가서 사왔다.

(집앞 마트에서 세일하길래 20개들이 한박스 사왔다) 

노란색 봉지커피와는 다른 달달한 맛. 

그걸 한잔 마시면 그래도 .... 

출근길에 샌드위치+아메리카노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 먹던 투썸이나 스벅은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는한 잘 안가게 된다. 

내 출근길에는 투썸도 스벅도 없다. 

종류는 다르지만, 일은 계속 하고 있는데도(집안일+육아) 내 출근길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암튼 개당 몇 십원쯤 비싼 봉지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면

잠시지만, 세상 부러울 게 없다. 

행복하구나. 이런 달콤한 맛이라니.

그리고 집안일 모드에서 돈벌기 모드로 전환해

수업 준비를 한다.

마흔이 넘어도 멈출 수 없는 삽질.

.... 시간강사 일을 시작했는데, 되도 않는 역사 과목을 맡아서 매일 밤 운다. 

너 자신을 알라. 제발. 쫌! 


12시40분에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달려가면 다시 오후 엄마 모드가 시작된다. 

일주일에 세번은 1시40분에 하교하는데, 이 날들은 참으로 길고 소중하다. 

 

아이가 하교하면 다양한 예체능 학원에 함께 왔다갔다하며

그 틈에 둘째를 데리고 온다.

그럼 우리 삼총사는 다시 만나 남은 하루를 함께 한다. 


우리집에는 개미2, 베짱이2이 함께 살고 있다. 

개미들은 베짱이들이 부럽기만 하다. 

너네도 자라면 개미가 될거냐.


개미1은 돈벌러 가고

남은 개미와 베짱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고 껴안고

난리부르스를 떤다. 


공부는 진짜 더럽게 안하려고 하는 베짱이를 바라보는 개미는 속이 탄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서 개미 되겠지.


베짱이들아, 밥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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