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서른 두살이었다.
강원도 산기슭에 터를 잡고 사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너 남자친구 있니?"
"아니요~!"
"그럼 소개팅 하자, 내가 전화번호 넘길게."
"네? 뭐하는 사람인데요?"
"야, 남자야 남자."
이건 뭥미?
내가 뭐 남자에 환장한 여자였던가?
(운명의 남자를) 참고 또 참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여러 뻘짓으로 이상증세(?)가 나타나고 있던 그때
운명처럼 남편이 된 남자를 소개 받았다.
나와 비슷한 와꾸를 가진 선배(여자다)는
"너는 나처럼 살면 안된데이"하고 "나쁜 남자로 호되게 남자를 배운(아니 대체? 뭘?) 다음
남자보는 눈을 갖춰 좋은 사람하고 결혼하라"며 본인은 물론 대부분의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를
내게 넘겼다.
그때는 남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일단 서른 아홉살이라는 그 냥반의 나이가 ... 아쉬웠다. 몇 개월만 있으면 마흔이 된다는 거잖아?
내가 이런 노땅 만나려고 이날 이때까지 이러고 있던건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스치며
내세울 것 없는 와꾸와 배경 모두를 두루두루 갖춘 나였지만, 그냥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사람의 행동이 더 가관이었다.
내 출장과 그 냥반의 여행 일정으로 한달째 소개팅 날짜를 미루고 있던 어느날,
어르신을 결국 일을 내셨다.
"일요일 0시, 0000로 오세요" 라는 문자를 당일인지, 전날인지 보내신거다.
그 문자를 보고 싸~~ 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얼른 만나고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소개팅,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자리에
떡이 될랑말랑한 깻잎같은 앞머리에 실핀을 꼽아 기름이 내려오는 것을 임시로 막고
엄마랑 커플로 사입은 더위를 달려주는 시원한 냉장고 바지를 주워입고 광화문으로 뛰어나갔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
<마지막 4중주>라는 소주 땡기는 영화를 예매한 그 냥반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자시고 있었다.
셔츠 양팔은 걷어 부치고.
대충 인사한 다음 종각역부터 택시를 잡겠다고 비 사이를 뛰어 오느라 가뿐 숨을 식혀줄 아아를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인사하고 시덥잖은 얘기를 하다 커피를 원샷으로 클리어 하고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갔다.
우울한 영화였다.
그때까지 씨네큐브는 내게 정우성과 유지태의 실물을 보고(무슨 영화제? 같은 거 였다) 심지어 정우성님과는 말도 섞었던 추억이 방울방울 있던 공간이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
.
.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때 그 냥반이랑 용감하게 결혼해서 겁도 없이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다.
소개시켜준 선배는 내가 그 냥반이랑 만난다고 하니 약간 놀라며
그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10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같이 뭔가를 도모하던 사람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까였다더라.
그때만 해도 이렇게 될줄 몰랐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지나고 나서는 알았다.
그 냥반의 자기의 오랜 친구들을 결혼 전 내게 소개시켜주지 않은 것도,
그들이 그의 옛 여자친구와 모두 아는 사이라는 것 등등.
사실 결혼하고
박터지게 싸우느라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가 여럿 종합 선물세트 시리즈로 준비되어 있었기에
그건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다만, 첫 아이를 낳고 그가 옛 휴대폰을 찾아 충전시키던 걸 본 적이 있다.
휴대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판도라는 생각보다 쉽게 열릴 것 같았다.
외면한 건 아니었지만
묻지도 않았다.
...
남편의 옛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남편이 내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가 뭔가 보여주려다 최근통화 목록이 떴고,
나는 보고 말았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그 이름.
부재중 전화.
그녀는 왜 그에게 전화했을까?
아직 남편에게 묻지는 못했다.
아마 묻지 못하겠지.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근 10년만에 한 건강검진에서 비만, 복부비만을 비롯해
몇몇 재검이 나온 나의 모습을.
빨갛게 칠해진 통화목록의 그 이름을 보고
그녀 또는 그에게 어떤 마음이 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내 몸이 더 좋지 않다는 사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운다.
젖을 먹이고 똥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입힌다.
학교에 보내고 공부를 시키고 학원을 보낸다.
틈틈 집안을 치우고 살림을 한다.
카드값과 대출금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바쁜데, 나를 위한 것은 없다.
나를 위한 시간도 돈도 없다. 가끔 그걸 깨닳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화가난다.
처량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
11시 혹은 12시, 늦으면 1시에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고
큰 아이의 학원을 오고간다.
일상에 감사하면서
아이를 잘 키우면서
내가 나로 살아갈 방법은 없는걸까?
이제는 정말 그 안경끼고 머리긴 아저씨 말씀처럼 저스트 두잇 말고, 싱크 퍼스트가 되어야 하는데
.
.
.
그녀의 부재중 전화가
내게 생각할 힘을 끄집어 내길, 그러길 바라본다.
비오는 날, 떠올릴 첫사랑이 없는 것도 재미없다.
다음 생에는 남미의 축구 선수로 태어나
막 살아보리라.
아직 기회가 있는 양반들은
부디, 비오는 날 떠올릴 추억거리를 많이 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