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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08. 2023

아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요?

이비인후과에 데려가 귀를 파주세요, 그래도 안 들으면 뽀뽀를 쏘세요!

벌써 마흔 두번째 경험하는 새해이다.

나이와 함께 고민도 늘어가지만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면 그깟 고민쯤이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 

특히 코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저기 저 단전 아래 피하지방 너머 어디매쯤 숨어있는

모성이 불쑥 '나 여기있지롱' 하고 나댄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했던 상냥하지 못한 행동이나 모진 말들이 생각나

괴롭기도 하고

같이 보냈던 소소한 하루가 생각나 웃음이 나기도 한다.


엊그제인가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사랑하고 있었다.


밥도 안 먹고 옷도 안 입고

공부도 안 하고...

일기쓰기와 책읽기 달랑 2개인 방학숙제도 안한다. 

오늘 내내 일기 쓸거야, 하더니 놀다 잠드셨다.

 

암튼 엄마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행동하는 1호와 2호를 향해

매일 시시때때로 천불이 솟구쳤건만

그래서 나랑 애들이랑은 안맞다, 했건만

이럴수가...

나는 그 놈들은 사랑한다.


이제 2학년이 되는 1호와 전쟁같은 매일을 보내던 날들 중 하루였다.

방학이라.... 하루 서너시간 빼고는 온종일 함께 한다.

성질급한 엄마와 느긋하고 여유로운(좋은말로 하면) 아들의 합은...

생각보다 벅차다. 



나의 뽀뽀를 받아라

깊은 빡침이 휘몰아치던 순간,

나도 모르게 "너 자꾸 그러면 뽀뽀 5천번 한다" 했더니

글쎄 이 녀석이 빙글빙글 웃는 게 아닌가.

앞니 두개 빠진 시원한 잇몸을 드러내며

웃더니 "이제 4천999번 남았어요"라며 좋아한다.


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이 녀석 아직 애기였구나.

....

동생한테 치여서 의젓해 보였던 것 뿐이었구나.


암틈 그래서 남은 뽀뽀를 해치우게 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아이와 관계가 보드라워졌다.

세상에.


읽으면 읽을수록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던 육아서와

종종거리게 만드는 홍수같은 유튜브.

내가 보고 들어야 할 건 다른 전문가들의 말이 아니라

내 아이의 눈이었던 것일까.


아부지가 그러셨다. 

자식농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괜히 헛짓 하지 말라고.

(그래서 아부지는 자식농사 잘 지으셨나요? 여쭤보려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서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 나이 마흔이 넘은 나는 드디어 본전을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간다. 앗싸!)


동감한다. 나도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

아니 아니, 아이들이랑 재미있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란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열어가길 바란다. 

나도... 나에게도 바란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열어가고 싶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이를 먹고, 겁도 없이 새끼를 둘이나 낳았는데, 아직도 그걸 모른다. 

무엇인지 아직도 찾고 있다.

이미 그걸 찾아서 계속 정진하고 있는 어른들도 있다. 


나도 찾아내고 싶다. 

이미 늙었으니 애들 잘 키우고 그들의 인생을 관람하는 엄마 말고

더 늙기 전에 새싹들이랑 같이 쑥쑥 자라고 싶다. 

아이들 덕분에 영어책을 읽고, 

아이들 덕분에 한국사를 공부하고, 

아이들 덕분에 성장하는 내가 되고싶다.


이미 별 볼일 다 본, 

그냥 그저 그런 인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쉽다. 

아직 안끝났다. 

그러니 생각해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 


영어 배운지 5개월 된 아이에게 apple 못쓴다고 지랄할 자격이 내게는 있는가?

세부 어느 식당에서 "미디엄으로 줄까" 묻던 직원에게 "라지로 주세요" 했던 내가?


미안하다, 아들아. 

나의 뽀뽀를 받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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