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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n 14. 2023

'좋다'와 '싫다'에 속하지도 섞이지도 않는 그것

끝없이 가라앉는 그 끝에 닿은 진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저 대사를 흘려들었다. 

그럼, 눈에 보이는 건 뭔데?

그때 나는 20대였다.


마흔이 넘어 저 문장을 다시 만났다.

아이와 책방에서 책장을 넘기는 중이었을까.

살면서 그닥 끄집어 낸 적 없는 문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왈칵 났다.


그렇지.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지. 

근데 그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튀어나오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좋다' '싫다'는 분명 뭔가를 원하거나 반하는 욕망인데

감정들 중에는 어떤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좋다, 싫다로 나누기 불가능한 감정들...


이를테면 나는 배가 고플 때도 먹지만

배고프지 않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먹을 때가 있다. 

어디선가 감정적으로 푸지면, 그러니까 포만감을 느끼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반대의 경우에 적극 동의한다. 

결핍 또는 불안, 짜증과 신경질, 불평 불만 등 

어둠의 감정들에 휩싸여 있는 경우

쉴새 없이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 하이에나가 되는 사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감정을 내가 잘 알아야 하는데, 

불편함 정도로만 의식하고

그 이상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날것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제법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들은 헤헤 거리며 바보 천치처럼(사실 바보에 가깝긴 하지만) 살아가지만

그 바보 천치도 괴롭다. 아프다.


아이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고

다정하게 말할 것들에도 짜증을 섞어 뱉어낸다.

스스로를 바로 볼 용기도 여유도 없으면서

내가 아닌 사람에게 불평 불만을 쏟아낸다.


이렇게 글자로 마음을 하나씩 펼쳐보면

저 구석에 구겨진 것의 정체도 알 수 있겠지.


언젠가의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패기가 넘치기도 했으니.


화가 나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남편,

뭔가 항상 핀트가 맞지 않는 1호,


그래도 귀염둥이 2호가 있지, 하며 아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더니

내 얼굴을 쪼물거리던 2호 왈, 


설마, 아들아 니 눈에 내가 이런 모습인건 아니지?  <사진 픽사베이>


"엄마, 나 말할게 있어."

"응, 뭔데?"

"엄마,

 엄마 진짜 진짜 못생겼어."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단박에 말했다)

"뭐라고? 나랑 똑같이 생긴 니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리고 엄마, 엄마 진짜 진짜 뚱뚱해. 나는 귀요미잖아!"


그렇게 나는 아이의 눈과 입을 통해 나의 진실과 닿았다.


눈에 잘 보이고 중요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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