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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Oct 11. 2024

나도 글 쓰는거 좋아하는데...

[좋아하는거랑 잘 하는건 좀 다른건가?]

출근길에 친구로부터 톡이 왔다.

평소에 개인적인 연락을 많이 주고받지 않으니 친구라기보다 여고동창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운전 중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얼핏 한강 어쩌고... 하며 감격스러워 밤새 잠을 못 잤다는 내용이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돋보기를 끼고 나니 내용이 다 눈에 들어온다.

한강이라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온 나라 아니 세계가 들썩 거렸는데 나는 출근해서야 알았다.

뉴스가 뉴스가 아닌 셈이다.

TV를 보지 않으니 항상 하루 지난 다음에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게 된다.

늦게 확인하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뉴스를 보게 되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얘기할 때 멀뚱멀뚱 쳐다만 보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관련 기사들을 쭉 훑어봤다.

온통 선한 것만 보고, 듣고, 말할 것 같은 그녀의 인상이 천상 글만 써온 듯한 순수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작가의 DNA를 타고난 것 같은 그녀가 너무 부러워서 가슴 언저리가 텅 빈 것처럼 허하다.


친구가 나에게 한강작가의 소식을 전한 이유는 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잘하는 것이라고는 정리정돈과 글 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으면 부끄럽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나의 여덟 살을 떠올려 본다.

호적에 한 살 늦게 실렸다는 것을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알았다.

친구들은 다들 학교에 가는데 나만 집에 있어야 할 때는 상실감이란...

부모님의 사전 설명이나 배려 따위는 아예 없었다.

왜 나만 학교에 안 가느냐며 울고 불고 하다가 결국 혼이 났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다 떼었기에 입학만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었다.

학교를 놀이터쯤으로 생각했던게지.

그러나 아버지가 조금 신경을 썼더라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지금도 아쉽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언니와 오빠가 새책을 받아 왔는데 그날이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내가 동화책 한 권 없는 집에서 살다가 유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그날이다.

언니와 오빠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밖에 나가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책가방부터 받아 들었다.

무게도 느끼지 못하고 기대감에 들떠 가방을 안고 뒤뚱거리며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낸다.

가장 재미있는 건 도덕책과 국어책이었다.

마치 동화를 읽는 것처럼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책을 읽을 때는 옆에서 불이 나도 모를 지경으로 빠져 들었다.

그렇게 총 네 권의 책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고 더 이상 읽을 게 없으면 산수책의 응용문제들을 읽기도 하고 사회나 자연책을 읽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내가 책을 꽤나 좋아하고 많이 읽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나는 책을 별로 많이 읽지 않았다.

책 읽기에 빠지면 눈과 귀가 닫혀 버리는 집중력 때문에 그렇게 기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꿈꾸던 미래는 늘 문학이나 글이 있었다.

사촌오빠가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내가 국민학생 때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었을 때 내가 국문학자라고 대답을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는 전혀 기억 없음)

어린 나이에 대통령이나 선생님, 과학자가 아니고 국문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흔한 대답은 아니었을 테니 그럴만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애는 어디 가고 지금은 이런 아줌마만 남았네"


라고 농담으로 응수하지만 마음은 씁쓸하다.

고등학교도 간신히 갈 수 있었던 형편이라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니 대학은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물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주경야독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의지가 강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라도 얼른 졸업해서 집안 형편에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빠듯한 살림에 등록금을 대 주었던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대학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1년에 네 번의 등록금 중 두 번은 방학 때 알바로 번 돈으로 충당했다.

효심이나 독립적인 책임감이 아니라, 학교에서 등록금 미납자를 닦달을 해대는 통에 견디기가 힘들어서였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항상 나를 목마르게 했다.

그러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줄곧 일기를 써왔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일기 쓰기를 계속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블로그라는 것이 생기면서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댓글로 응원도 해주니 그야말로 나는 딴 세상을 만났다.

마치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 있던 나에게 내미는 커다랗고 힘이 센 손 같았다.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심지어 영수증 리뷰까지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것에 흔적을 남겼다.

그런 걸 뭐 하려 하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원래 글쓰기 좋아하는 관종이야."


내 글을 읽는 지인들 중 몇은 책을 한번 내라, 작가가 될 생각 없냐 하며 나를 치켜세우지만 사실 나는 여기저기 공모전에서도 매번 낙방만 하는 루저다.

그러니 그들의 칭찬에 민망할 뿐이다.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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