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인 남편 길들이기 30년]
남편은 유명한 '58년 개띠'에서 한 살을 차감한 59년생이다.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서인지 아니면 장남이라서인지 남편의 사고는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하다.
"나는 한 번도 이부자리를 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마누라를 꽉 잡고 산다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지만 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마누라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다.
웃고 넘길 수 있는 그 말에는 그의 아내로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에피소드가 함축되어 있다.
가끔은 저 덩치로 나같이 왜소한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세상이 물리적 힘의 원리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지금껏 설거지나 청소기를 돌리는 등의 집안일을 거들어 본 적이 없다.
집안일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라는 것을 신념쯤으로 알고 사는 사람 같다.
신혼 때는 그의 신념에 큰 이견이 없었다.
가정경제의 100%를 남편이 책임졌고, 나는 전업주부로 살았기에 당연히 집안일과 육아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한다고 했어도 별로 깔끔할 것 같지 않아 내가 말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집안일이라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고 자존감이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빼앗기면 나의 실체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으니 나도 문제이기는 했다.
그러던 것이 남편의 사업실패로 내가 돈벌이에 나서면서 형편상 조금씩 도우며 살아야 했는데 나와 달리 남편은 변화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MZ가 들으면 이혼사유가 될 테지만 신혼 때부터 설계가 그렇게 된 터라 바꾼다는 게 마음 같지 않았다.
막노동을 하는 남편은 보통 새벽 다섯 시면 집을 나선다.
일찍 일어나는 게 체질화된 사람이라 쉬는 날도 그 시간에 일어나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전업주부로 있을 때야 졸린 눈 비벼가며 아침상을 차려 내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다시 잠을 잤지만 맞벌이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아침밥때문에 가끔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쉬는 주말에 늦잠을 좀 자려고 하면 일곱 시쯤부터 남편은 계속 나를 깨운다.
다섯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며 배가 고파서 죽을 거 같으니 밥을 달라고 계속 치근덕대면 홧김에 일어나 대충 아무거나 꺼내서 차려주고 다시 눕지만 잠은 멀리멀리 달아난 후다.
그러던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침전쟁이라 명명한다.
그날도 남편은 내가 차려준 주말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방에 누워 있던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식사를 마치고 반찬 뚜껑을 닫던 남편이 나를 보더니 그대로 두고 TV 앞으로 갔다.
"하던 거 해. 왜 그대로 두고 가?"
라고 묻는 말에 남편의 예상치 않은 대답이 전쟁의 시작의 나팔소리가 됐다.
"그거 니 일이잖아."
그거 너. 의. 일. 이잖아.... 너의 일....
자기가 먹던 밥상을 정리하는 게 나의 일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동안 땔감처럼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휘발유에 젖은 것처럼 불이 확 붙었다.
"그게 왜 내 일이야?
그게 왜 내일이냐고?!!
당신은 먹고 누워있는 게 일이고, 나는 그런 당신이 먹은 거 치우는 게 일이야?!!"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나오는 나의 레퍼토리가 있다.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는 남편에게 내가 맞벌이로 가장의 역할을 돕고 있으니 당신도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은 그 무기를 장착도 하기 전에 눈치 없는 남편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럼 너도 누워서 놀아. 누가 치우라고 했어? 왜 치우면서 난리야?"
이걸 놓치면 안 된다.
남편이 이렇게 판까지 깔아 주는데 이걸 놓치면 바보지.
"그래? 그 말 후회 안 하지?
그럼 앞으로 나한테 절대로 밥 달라고도 하지 마!
나도 밥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다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
누구든지 나한테 요구하기만 해 봐. 다 죽을 줄 알아!!!"
그날의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남편은 감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칼로 물 베기 게임 정도로 알았겠지.
어쩌면 나는 그날을 위해 평소에 무기를 갈고닦으며 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계엄령과 같은 나의 선포에 남편의 마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정작 겁을 먹고 억울해 한건 애들이었다.
"엄마,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도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거야?
나는 너무 억울하잖아"
그 당시는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딸이 하소연을 했지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번 기회야 말로 내가 주방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평생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 똑같아. 내가 해주고 싶을 때만 할 거니까 알아서 해결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각오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전쟁 이후 한 달 정도 남편과 냉전을 하면서 서서히 남편은 셀프 식사에 길들여졌다.
싸우고 난 후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구조상 나는 주방일을 놓는 자유를 포기하기 싫었고, 남편은 아마도 자존심이 상해서 스스로 챙겨 먹은 것 같다.
나도 양심은 있기에 밥통에 밥은 떨어지지 않게 항상 해 놨고 가끔은 찌개나 반찬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었다.
가장 좋았던 건 주말아침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이고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나를 깨우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혼자 살고 싶어 하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그 전쟁이 어떻게 종전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취한 전리품은 그대로 있다.
오히려 밥을 차리려는 나에게
"놔둬.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
라고 말을 하는 남편이 아닌가.
그럴 때는 아무 말 없이 차려줘도 되지만 난 차려 주지 않고 그대로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마치 '이건 니 일이잖아'했던 그날처럼.
어차피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만 꺼내 먹거나 가끔은 자기 스타일대로 찌개를 끓여 먹으니 내가 차려 주는 것을 정말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쾌거를 무용담처럼 자랑했던 날 친구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여태 그러고 살았냐는 듯한....
분리수거 한번 해주지 않는 남편과 살아보지 않은 너희들이 이 행복을 알턱이 없지만 나는 만족한다며 정신승리가 아닌 행동승리에 뿌듯해한다.
내가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몸도 마음도 편한 쪽으로 조금씩 맞춰 갔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만 편하고 나머지 한쪽이 불편하면 종국에는 원망만 남을 것이 아닌가.
가끔 남편이
"나는 이제 혼자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아.
찌개도 맛있게 끓이고"
웃으며 천진난만하게 자랑을 하는 남편에게
"혼자 살고 싶어?"
라고 묻는다.
남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며 창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