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1월의 폭설로는 117년 만이라고 한다.
낙엽이 져버린 앙상한 나무에도 눈이 많이 쌓였다.
가지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까지 내려왔다.
털어주고 싶다. 자유롭게...
출근길에 라디오를 틀었더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온다.
눈이 내리고, 캐럴이 있는 이런 날은 여지없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추억이 없는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
국민(초등) 학교에 다닐 때 나는 많이 가난했다.
외도로 집을 나간 아버지와 6남매.
가난의 상징 같은 수식어가 아닌가?
그때를 떠올리면 바탕색은 항상 회색이다.
여름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용돈이 따로 없으니 성탄 카드를 살 수는 없고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색종이로 카드를 만들었다.
그걸 들고 친구집에 찾아가 몰래 우체통에 넣어 놓고 오곤 했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눈만 내리면 나는 그때 혼자 걷던 눈길이 생각난다.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달라붙을 만큼 추웠던 그 겨울.
6남매가 모여있는 답답한 단칸방을 나와서 걸었던 눈길이 많이 그립다.
어딘가 갈 곳이 있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스스로 나의 우편배달부가 되어 혼자 다녀오는 길도 좋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서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로움도 즐길 줄 알던 아이였던 것 같다.
가끔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책 속의 세계로 도망을 치기도 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책을 읽는 중에는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벽 같은 것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총알도 막아낼 것 같은 두꺼운 방탄벽이.
최근에 소설을 한번 써보라는 딸의 권유로 시도를 해 보았으나 몇 번 해보고 깨끗하게 접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꿈나무 키우듯 딸은 적당히 당근과 채찍을 주며 희망고문 했으나 '나는 아니다'라는 확신을 얻고 포기했다.
소설가, 아니 창작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글솜씨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도 깨달았다.
소설이랍시고 올린 졸필에도 라이킷을 눌러주신 구독자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부끄러워서 지금은 글을 삭제했다.
역시 나의 한계는 이렇게 내 주변의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나열하듯 써내려 가는 것까지인가보다.
첫눈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