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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01. 2024

아버지와 아들 1

[남편이 번 돈은 다 어디 갔을까?]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집을 구할 때의 일이다.

개인 휴대폰이 없던 때이니 시어머니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집에 가봐. 엄마가 우리 살 집을 계약했다니까 자기가 보고 결정해"

지방에 있으니 오기가 쉽지 않다며 내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남편의 전화에 퇴근 후 시댁에 들렀다.

시아버님이 방을 보고 계약을 했다며 시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댁 바로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동네라면 집들이 전부 거기서 거기일 텐데... 신혼살림을 할만한 집이 있을까?'


골목 어귀 낡은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어머니를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대문 바로 옆에 작은 나무 쪽문이 보였다.

아니겠지... 설마...

내 바람을 깨고 어머니가 그 쪽문을 열고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보기도 싫었지만 그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멀찍이 서서 들여다보니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시멘트 바닥의 좁디좁은 부엌은 부엌이라 할 수도 없이 구들장 아궁이에 신발을 벗는 댓돌 하나 있는 수준이었다.

달랑 방 하나 뿐인... 그것도 연탄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라니...

'날 뭘로 보고...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정권이 없는 어머니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처분만 바라는 듯한 그 표정 때문에 어머니께는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여기는 세탁기도 안 들어가잖아요..."라고 말을 했다.

"빨래는 우리 집에 와서 하면 되지..."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만 가보겠노라며 시아버님께 인사도 안 드리고 어머니께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가난이 싫어서 돈 많은 사람인줄 알고 남편을 선택했는데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열악한 곳에 신혼집을 차리려고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처량하고 서러웠다.

'임신만 아니라면...'


저녁에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는 대성통곡했다.

"어떻게 나를 그런 집에 살라고 할 수가 있어? 나 결혼 안 할 거야!!  전세 100만 원짜리 집이래. 말이 돼?"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은

"자기 맘에 안 들면 안 들어가면 되지"라고 나지막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계약했다는데 계약금은 어쩌고?"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계약하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계약금이 얼마나 된다고... 내가 이번달 월급 자기한테 보내줄 테니까 우선 그걸로 자기 맘에 드는 집 찾아서 계약해. 자기 언니랑 같이 좀 다녀. 얼마짜리 구하든 내가 나머지 돈 마련할 테니까"


남편의 한마디로 일은 생각보다 간단히 마무리 됐다.

나에겐 '간단히'였으나 남편과 시어른들 사이에서는 큰소리가 났던 모양이다.

꼬박꼬박 한 달에 300만 원씩 시아버님께 돈을 보내 줬는데 100만 원짜리 전세방을 계약해서 여자 친구를 울게 한 대가로 시아버님은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고, 그게 화근이 되어 고성이 오갔던 모양이다.

나중에 시누이가

"그때 내가 그랬어요. 얼마나 잘난 년이 들어오길래 집을 이렇게 쑥대밭을 만드는지 보자고"

라고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당시에는 문제가 좀 컸다는 걸 알았다.


남편이 시아버님과 의절을 하게 된 것은 그때 이후인 것 같다.

의절의 핵심 키워드는 아마도 '배신'이 아닐까?


남편이 조금만 입금이 늦어도 남편이 있는 현장으로 전화해서 월급이 안 나왔냐, 왜 돈을 안가져오냐며 남편을 다그쳐서 노이로제까지 생길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자기가 쓰고 한 달 월급만큼도 안 되는 단칸방을 전세로 얻어 주려 했으니...


남편은 그달 월급인 300만 원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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