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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Feb 27. 2024

나는 돈과 결혼했다.

[그러나 가엾게도 남편은 나와 결혼했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나의 돈사랑을 끊어내지 못했다.

돈과 결혼중 선택하라고 했다면 돈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나 젊었을때 결혼 적령기가 20대 중반정도였는데 나는 중반을 막 넘어가려는 나이였기에 엄마는 혹시나 내가 결혼을 못하게 될까봐 염려를 하셨던 모양이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몇번의 맞선 자리를 만들었다.

그 중 마지막이 남편을 소개받은 자리다.


내가 처음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그에 대한 첫인상은 '비호감'이었다.

첫 만남인데 예의 없이 입고 나온 가죽점퍼에 거무잡잡한 피부.

대충 주워 입은듯한 남방까지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가다가 잠시 들른듯한 차림에 내가 무시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었으나 만남을 주선한 엄마 친구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앉아 있었다.

솔직히 핸썸한 외모였다면 문제가 좀 달랐겠지만 정말 아저씨 비주얼 그대로였기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 남자와 둘만 남게 되자 갑자기

"아, 이런 자리 쪽팔리지 않아요? 다른 데로 나갈까요?"

그 말이 약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외모처럼 고지식하지는 않겠군.'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잘 보일 필요 없이) 정말 마음 편하게 대화했던 생각이 난다.

비호감의 이 남자에게 내 연락처를 건넨 이유는 단 한 가지.

만나자마자 결혼이야기부터 꺼내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결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다.

나도 사실 자만추 스타일이라 결혼을 생각하고 나간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바로 이성을 만나는 것은 도박과 같다고 생각한다.

당시 썸남과 정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는 마치 뿌리내리지 못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나무처럼 뭔가 불안하고 허전했다.

남편과의 맞선 자리는 친구의 조카니 한번 만나보라는 엄마 말에 누구라도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나간 자리였다.

마침 결혼에 대한 부담도 없으니 만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레스토랑의 메모지에 47-2756이라는 전화번호 숫자만 적어 준 것이 부부의 연을 맺게 했다.


첫 만남때와 달리 다음 만남부터 나는 별로 멋을 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다가 아니다 싶으면 헤어질 것이기에 별로 예쁘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은 그가 나를 위해 아낌없이 쓰는 '돈'때문이었다.


나에게 돈은 우정이고, 의리이며 사랑이다.

나에게 돈을 아낌없이 쓰는 친구가 있다면 찐 우정일테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람이 연인이라면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굳게 믿었다.

남편은 그런 조건에 모자람 없이 딱 맞는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가 '아~ 추워'라는 한마디에 바로 옷가게에 들어가 평소에 내가 사지 못하는 비싼 옷을 망설임 없이 사주었고, 남자 친구에게 반지를 선물 받은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에게 기죽게 하면 안 된다며 반지에 시계까지 사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운전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비록 할부이긴 하지만 차까지 사줬다.

여성 오너드라이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빨간색 프라이드 쓰리도어가 처음 출시되어 유행하던 때라 남편은

"꼭 빨간색 프라이드로 사야 돼~"라며 계약금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 큰돈을 건네면서도 동행하려 하지 않고 나를 믿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가난하게 살아와서 늘 돈에 허기를 느꼈던 나에게 이런 복이 왔다는 것이 가끔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와 데이트를 할 때는 아저씨 같은 비주얼이 창피해서 혹시라도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마주칠까 봐 동네에서는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만나기 위해 약속을 정해도 기다림이나 설렘 따위가 전혀 없었다.

멀리 강원도에서 일을 하던 그가 가끔 나를 보기 위해 온다고 전화가 오면 때로 귀찮을 때도 많았다.

그와의 데이트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밌고 좋았기에 때로는 훼방꾼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이야기를 입밖에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남자이었기에 혼전임신이 아니었다면 평생 연애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스물여섯의 나이에도 노는 게 좋아서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던 나에게 부족한 가전을 채워 넣고 집들이를 하는 것이 좋겠다며 돈을 주는 이 남자.

"돈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라고 말하는 그가 나는 은행의 백지수표보다 더 든든했다.


직장생활이 지겨워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던 나의 필요조건과 맞벌이를 싫어했던 남편의 충분조건이 만났으니 이거야말로 천생연분이지.


결혼당시 내 월급은 25만 원 정도였고, 그 당시 평균월급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도 이직을 자주 해서 경력자의 월급을 받지 못했으니까)

남편의 월급은 나의 연소득을 방불케 하는 300만 원.

생전 통장에 찍혀보지도 않은 돈이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황홀했다.

그때의 결혼축의금 평균 금액이 1만 원이었는데 남편회사의 대표는 바빠서 결혼식에 참석을 못했다며 축의금을 100만 원 입금해 줬던 기억도 난다.

남편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회사 대표에게 이 정도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니 내가 결혼을 정말 잘한 것 같았다.


결혼하고 집에서 쉬게 되니 나에게는 돈과 시간밖에 없었다.

매일 쇼핑을 다녔다.

하지만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했지.

돈이 있어도 비싼 옷이나 가방 등은 살 줄 몰랐다.

그저 새로 나온 신기한 물건들을 보면 주체하지 못하고 사재끼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언니는

"돈 있을 때 모아. 나중을 대비해서..."라고 말을 했지만 너무 듣기 싫은 귀찮은 잔소리일 뿐이었다.


나의 평생은 '돈 있을 때'의 연속일 텐데 무슨 상관이람.

남편도 나의 소비습관에 대해 아무 말을 안 하는데 왜 언니가 난리인지...


써도 써도 모자람이 없는 돈.

다 떨어지면 남편에게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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