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이 좋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돈사랑을 끊어내지 못한 크리스천이다.
돈과 결혼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면 고민 없이 돈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왜 결혼했을까?
그때는 왜들 그렇게 결혼을 일찍 하려 했는지. 서른이 되기 전에 대부분 여자들은 결혼했고, 스물대여섯이 지나면 노처녀 그룹으로 자동분류 되었다.
나는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결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조차 없어서 엄마에게 걱정덩어리였다.
미인인 엄마를 닮아 얼굴이 귀엽고 예뻤던 언니는 좋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끈기 있게 구애했던 형부와 일찍 결혼했고, 오빠는 대학 졸업 후 아직 안정된 직장을 찾지 못한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남자의 결혼 적령기는 여자보다 늦었기에 오빠 결혼에 대해서 당사자인 오빠도 엄마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인 나부터 어떻게 치워 보려는 듯 엄마는 기회만 되면 주변 지인들을 통해 맞선 자리를 만들곤 했다.
남편을 소개받으면서 재미없는 맞선은 끝이 났다.
엄마는 친구가 조카라고 하니 그냥 믿었는지 그의 신상에 대해 자세히 묻지도 않았나 보다.
가족관계와 나이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애프터 신청도 없이 끝날 거라 생각하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남편을 만나기로 한 장소는 재래시장 입구에 있는 다방이었다.
엄마 친구를 따라 비좁은 계단을 몇 개 내려가서 문을 열고 들어 선 다방 내부는 지하 동굴처럼 어두워 보였다.
조금씩 눈이 익숙해지면서 보이는 다방의 중앙에는 기다란 수족관이 있었고 의자 등받이마다 다방 이름이 새겨진 하얀 커버가 덮여 있었다.
'아직 안 왔나 보네?'
앞서 가는 주선자 아주머니를 따라 수족관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드라마 전원일기에나 나올법한 칙칙한 분위기는 어디선가 '아가씨도 커피 한잔 해'라며 레지(손님을 접대하며 차를 나르는 여자)의 손을 주물러대는 할아버지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을 약속장소로 정한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얼굴도 보기 전에 센스 없는 이 남자에게 이미 20점쯤 감점을 주었다.
조금 있다가 다방 문이 열리며 남자가 들어왔고 엄마 친구가 손을 들어 그를 불렀다.
'조카. 이쪽이야'
고개를 까딱하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휴-'하는 작은 한숨이 나왔다.
거무잡잡한 피부에 머리는 대충 털어 말린 것처럼 적당히 헝클어져 있었고, 막 주워 입은듯한 남방에 라이더재킷 같은 가죽점퍼를 걸쳐 입은 것이 한눈에 봐도 만남에 대한 예의도, 성의도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동네 친구들 만나러 갈 때나 입는 가벼운 그의 옷차림을 보니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간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었지만 만남을 주선한 엄마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앉아 있었다.
그래. 차만 마시고 헤어지면 되지 뭐.
외모가 좀 핸썸했더라면 대충 입은 옷도 개성이 되었겠지만 이 남자는 센스라고는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주선하신 엄마 친구분이 눈을 껌뻑거리며 잘해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사라지고 난 뒤 나는 할 말도 딱히 없고 궁금한 것도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 이런 자리 좀 쪽팔리지 않아요? 난 좀 안 맞아서... 다른 데로 나가죠'
엄마 친구가 나가자마자 남자는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뭐야... 여기 당신이 정한 장소 아니었어?
그가 선택한 장소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어나자 남자는 따라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찻값을 계산했다.
치마를 입고 나간 나는 계단을 먼저 올라갈 수 없어서 계산하는 남자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어차피 오늘만 만날 거라고 여겼기에 잘 보이려고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행동에 주의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닌 건 아니니까.
20분 정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도착한 곳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고급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나도 꽤나 돌아다니면서 놀았던 동네인데 처음 보는 곳이었다.
가끔 오는 단골집이란 남자의 말에 첫인상과는 다른 면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기대를 조금 갖게 되었다.
점심때쯤 만났는데 해가 지고 저녁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대화가 재미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남자는 연락처를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딱히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직원에게 메모지와 펜을 부탁했다.
레스토랑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인쇄된 하늘색 메모지에 나는 이름과 집전화번호를 적어줬다.
(남편은 우리를 이어준 소중한 보물이라며 이 메모지를 지갑 안쪽에 넣고 다녔고, 결혼 1년 정도 지나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남자에게 연락처를 준 이유는 단 하나.
만나자마자 결혼이야기부터 꺼내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결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만나는 날부터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심지어 남편을 만나기 전에 만났던 남자는 첫만남에 '00씨 아니면 저 결혼 안할꺼예요. 00씨랑 꼭 결혼하고 싶어요'라는 말로 나를 겁먹게 하기도 했다. 그랬던 맞선남이 나보다 먼저 다른 맞선녀랑 결혼했다는 궁금하지도 않은 소식을 엄마에게 듣고 안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만나는 이 남자는 그 맞선남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그거 하나만으로도 점수를 땄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애인도 없으니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가볍게 만나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자만추 스타일이라 연락처를 주긴 했어도 작위적 만남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바로 이성을 만나는 것은 도박과 같다.
당시 엄마 모르게 만나던 썸남이 있었는데 그와 정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성에 대한 분별력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썸남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외모였고, 말도 잘 통했으나 서로 연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기에 미련이 많이 남았었다.
첫 만남때와 달리 다음 만남부터 나는 별로 멋을 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다가 아니다 싶으면 헤어질 것이기에 예쁘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가볍게 만난 나와 달리 남편은 매일 연락을 했고, 데이트비용도 자기가 부담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겼다.
매일 연락이 오는 남자가 가끔은 귀찮기도 해서 전화를 피한 적도 있었다.
그런 관계가 1년간 이어졌지만 설레거나 애틋한 감정을 느껴본 적 기억이 별로 없었다.
나는 왜 이 남자와 결혼했을까?
내가 돈을 대하는 자세는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돈은 우정이고, 의리이며 사랑이다.
나를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는 친구가 있다면 진짜 우정일 것이고, 연인이라면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굳게 믿었다.
남편은 그런 조건에 모자람 없이 딱 맞는 사람이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남편은
'내가 그때 너를 알았더라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돈을 줬을 텐데...'
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길을 걷다가 '아~ 추워'라는 한마디에 바로 옷가게에 들어가 평소에 내가 사지 못하는 비싼 옷을 망설임 없이 사주기도 했다.
친구가 애인에게 반지를 선물 받았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그 친구보다는 나아야 한다며 반지에 시계까지 사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는 운전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비록 할부이긴 했지만 차까지 사줬다.
그때의 기억은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여성 오너드라이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빨간색 프라이드 쓰리도어가 처음 출시되어 유행하던 때였다.
'꼭 빨간색 프라이드로 사야 돼~'
남편은 계약금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당부했다.
그런 큰돈을 건네면서도 동행하려 하지도, 참견하려 하지 않는 것이 나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느껴져서 좋았다.
가난하게 살아와서 늘 돈에 허기를 느꼈던 나에게 이런 복이 왔다는 것이 가끔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와 데이트할 때는 아저씨 같은 비주얼이 창피해서 혹시라도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마주칠까 봐 동네에서는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남편과 데이트 약속을 하고 나면 설렘보다는 부담이 더 컸다.
멀리 강원도에서 일을 하던 그와는 롱디였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가끔 나를 보기 위해 온다고 전화가 오면 귀찮을 때도 많았다.
그와의 데이트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밌고 좋았기에 때로는 훼방꾼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도 노는 게 좋아서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던 나에게 결혼은 현실이 아닌 환상의 연속이었다.
모아 놓은 돈이 없어서 신혼살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남편은 큰돈을 주며 말했다.
"집들이할 텐데 네가 기죽으면 안 되지. 부족한 가전제품 있으면 알아서 사. 돈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나는 남편이 은행의 백지수표보다 더 든든했다.
직장생활이 지겨워서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던 나의 필요조건과 맞벌이를 싫어했던 남편의 충분조건이 만났으니 이거야말로 천생연분이지.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고 꿈에 그리던 전업주부의 삶을 시작했다.
결혼당시 내 월급은 25만 원 정도였고, 그 당시 평균월급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도 이직을 자주 해서 경력자의 월급을 받지 못했으니까)
남편의 월급은 나의 연소득을 방불케 하는 300만 원.
생전 통장에 찍힌 적도 없는 숫자였다.
행복했다.
그리고 달콤했다.
그때의 결혼축의금 평균 금액이 1만 원이었는데 남편회사의 대표는 바빠서 결혼식에 참석을 못했다며 축의금 100만 원을 입금해 줬던 기억도 난다.
남편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회사 대표에게 이 정도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니 내가 결혼을 정말 잘한 것 같았다.
결혼하고 집에서 쉬게 되니 나에게는 돈과 시간밖에 없었다.
매일 쇼핑을 다녔다.
하지만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했지.
돈이 있어도 비싼 옷이나 가방 따위는 살 줄 몰랐고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저 새로 나온 신기한 물건들을 보면 주체하지 못하고 사재 끼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언니는
"돈 있을 때 모아. 나중을 대비해서..."
라고 말했지만 너무 듣기 싫은 귀찮은 잔소리일 뿐이었다.
나의 평생은 '돈 있을 때'의 연속일 텐데 무슨 상관이람.
남편도 나의 소비습관에 대해 아무 말 안 하는데 왜 언니가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써도 써도 모자람이 없는 돈.
다 떨어지면 남편에게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