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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01. 2024

혼전 임신

[실수인지 계획인지]

면허를 따고 나서 운전하고 싶다는 한마디에 차를 사라며 덜컥 계약금을 손에 쥐어주던 사람이지만 이 남자는 당최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편해서 만나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연애만 하다가 헤어지면 나는 처녀귀신이 되어 총각귀신만 찾아다니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결혼하자며 갑자기 부담을 주었다가 도망이라고 가는 날에는 나의 든든한 금고까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니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다.

결혼해 보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고,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면 아무리 남편이 나의 돈줄이라고 해도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낯을 가려 엄마만 찾는 조카를 보면서 '언니는 좋겠다. 애기가 언니만 좋아해서'라고 부러워할 정도로 나는 아기를 좋아하는데 아기 없는 결혼생활이라니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동침을 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순결관을 갖고 있는 나였지만 그가 정말 불임인지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무모한 첫날밤을 만들었다.

물론 자의적이라기보다는 술에게 전적으로 일처리를 부탁하고 주량을 오버해서 술을 마셨다.

집에 못 가는척하면서....


그 밤을 시작으로 남편은 나와 만나기만 하면 함께 자고 싶어 했다. 원하던 임신 소식은 없고 내 몸에 집착하는 남편이 짐승처럼 여겨져서 슬슬 만남을 뜸하게 잡고자 할 즈음 나의 몸에 소식이 왔다.

알람만큼 정확했던 생리소식이 없었다. 기다리기는 했지만 막상 생리가 없으니 무섭고 걱정이 됐다.

친구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산부인과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난생처음 가 본 산부인과에서 임신이라며 축하한다고 했다. 아직 임신초기라 초음파로 내가 알아볼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 뭐라 뭐라 말을 한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때부터는 안심보다 걱정이 앞서고 임신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게다가 나는 혼전 임신이 아닌가.


퇴근 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임신의 죄가 100% 남편에게 있는 것처럼 따져 물었다.


"임신 안 되는 사람이라며? 나 임신이라는데 어떻게 된 거야?"

"그래? 임신이래?"

"무슨 근거로 임신이 안된다고 했냐니까?"

"아니 그냥 내 느낌이 그래서..."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여러 번의 경험으로도 임신된 적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팩트는 내가 현재 임신 중이라는 것이다.

역시 스물여섯의 나이는 철딱서니라고는 없었다. 덜컥 임신을 하고 나니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가족 중 가장 편했던 언니를 찾아가서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처분만 바란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 뒤에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말할 용기가 없으니 언니가 대신 좀 처리해 주면 안 되겠냐고 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언니는 내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엄마한테는 네가 말할 거야?'라고 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으이그 앞으로 어쩌려고'하며 간접적인 수락을 했다.


임신을 알게 된 것은 10월 어느 날.

그때부터 결혼을 준비하기 위한 열차에 시동이 걸리고 슬슬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미 우리 집을 드나들며 인사를 해 놓은 상태라 따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까지 남편의 집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만나지도 않은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남편을 통해 어려번 들었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가 싫어서 인사를 하고 난 후로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정말 잘 왔다고 반색을 하셨지.  그 진심이 지금도 또렷하다.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어머니는 요리를 잘한다는 작은어머니까지 동원해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놓으셨다. 그때는 먹는 양도 적었던 데다가 긴장을 해서 거의 먹지 못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양가 부모의 상견례가 있었고, 딴살림을 하던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고 엄마만 그 자리에 나갔다. 

이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다 끝나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해야 하는 건가 했는데 가장 중요한 신혼집계약이 남아 있었다.


'집에 가봐. 엄마가 우리 살 집 계약했다니까 자기가 보고 결정해'

지방에 있으니 오기가 쉽지 않다며 내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남편의 전화에 퇴근 후 시댁에 들렀다.

시아버님이 방을 보고 계약했다며 시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댁 바로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동네라면 집들이 전부 거기서 거기일 텐데... 신혼살림을 할만한 집이 있을까?


골목 어귀 낡은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어머니를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대문 바로 옆에 작은 나무 쪽문이 보였다.

아니겠지... 설마...

내 바람을 깨고 어머니가 그 쪽문을 열고 들어 가서 보라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보기도 싫었지만 그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멀찍이 서서 들여다보니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시멘트 바닥의 좁디좁은 부엌은 부엌이라 할 수도 없이 구들장 아궁이에 신발을 벗는 댓돌 하나 있는 수준이었다.

달랑 방 하나뿐인...

그것도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이라니...


날 뭘로 보고... 


집안일에 결정권이 없는 어머니도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그 표정 때문에 어머니께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올것 같아 침을 꿀꺽 삼키며 간신히 힘을 주고 말했다.


"여기는 세탁기도 안 들어가잖아요..."

"빨래는 우리 집에 와서 하면 되지..."


세탁기도 안들어 간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셨는지 대답을 하시면서도 어머니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만 가보겠노라며 시아버님께 인사도 안 드리고 어머니께만 간단히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사연많은 여자처럼 울면서 집으로 왔다.

가난이 싫어서 돈 많은 사람인 줄 알고 선택한 남편과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열악한 곳에 신혼집을 차려야 한다니. 완전히 속은것 같은 이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처량하고 서러웠다. 


임신만 아니라면...


저녁에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는 대성통곡했다.


"어떻게 나를 그런 집에 살라고 할 수가 있어? 나 결혼 안 할 거야!!  전세 100만 원짜리 집이래. 말이 돼?"


집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는 6남매의 중간서열이었지만 적어도 남편에게만은 공주라고 생각했는데...

울고 불고 난리 치는 내 말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들었다. 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조용해졌다. 남편은  나지막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이 순간에 어쩌면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역시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기 맘에 안 들면 안 들어가면 되지"

"계약했다는데 계약금은 어쩌고?"

"계약금이 얼마나 된다고... 내가 이번달 월급 자기한테 보내줄 테니까 우선 그걸로 자기 맘에 드는 집 찾아서 계약해. 자기 언니랑 같이 좀 다녀. 얼마짜리 구하든 내가 나머지 돈 마련할 테니까"


남편의 한마디로 일은 생각보다 간단히 마무리 됐다.

그러나 나에게 '간단히' 끝난 문제가 남편과 시어른들 사이에서는 태풍을 몰고 왔던 모양이다.

꼬박꼬박 한 달에 300만 원씩 시아버님께 돈을 보내 줬는데 100만 원짜리 전세방을 계약해서 여자 친구를 울게 한 대가로 시아버님은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고, 그게 화근이 되어 고성이 오갔던 모양이다.

결혼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시누이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그랬어요. 얼마나 잘난 년이 들어오길래 집을 이렇게 쑥대밭을 만드는지 보자고'


시누이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저 우스개 소리로만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이 시아버님과 의절을 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의절의 핵심 키워드는 아마도 '배신'이 아닐까?

남편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남편이 받은 월급을 조금만 늦게 시아버님께 갖다 드려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

현장으로 전화해서 월급이 안 나왔냐, 왜 돈을 안 가져오냐며 남편을 다그쳐서 노이로제까지 생길 지경이었다니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 돈을 다 자기가 쓰고 한 달 월급만큼도 안 되는 돈을 보증금으로 쓰려했으니...

남편은 그달 월급인 300만 원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남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시아버님처럼 그가 주는 돈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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