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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03. 2024

아버지와 아들 2

[부성애라고는 없는 시아버님]

남편이 보내준 돈 300만원으로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다.

딸을 키우면서 느끼지만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다.

갑자기 임신이 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결혼 날짜를 잡았고,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스물여섯 여자.

부재중인 아버지 대신 가장으로 사느라 바쁜 엄마는 결혼 준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많은 시행착오로 눈물 흘렸을 것 같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 발품을 많이 팔지 않고도 새집을 구할수 있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15만원의 월세를 부담하면 되는 아주 깨끗한 원룸이었다.

(결혼전 내 월급이 25만원가량임을 감안하면 월세가 꽤 비싼 편이었다)

공사를 막 마치고 맨 위층에 주인집만 입주하여 살고 있었는데, 바로 아래층인 2층에 내가 입주할 원룸이 있었다.

말이 원룸이지 방 크기와 비슷한 거실이 있어서 남편과 둘이 살기에는 매우 만족스러운 크기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신혼부부라는 말에 반색하며 좋아했다.

(집주인들은 집을 깔끔하게 쓰는 신혼부부나, 독신여성을 선호한다)

집이 비어 있으니 아무때나 이사와도 좋겠다는 말에 신혼 살림을 미리 들여 놓겠노라 약속을 하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나서는 내 기분은 큰 짐덩어리를 치워버린 것처럼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집상태와 계약내용을 설명해 줬다.

탠션이 하늘을 찌를듯한 내 목소리에

"너가 맘에 들면 됐어. 이제 아무 걱정 하지마"라고 하며 덩달아 좋아했다.


남편 돈으로 집을 구했으니 이제 내 돈으로 그 집을 채워야 한다.

나는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 월급을 모두 탕진하고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썼으니 가전제품 마련할 돈 조차 없었다.

그나마 엄마의 강요로 억지로 들었던 곗돈이 전부인데 그건 결혼 비용으로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기억으로 100만원정도였던 것 같다.


내 형편을 아는 친구들이 냉장고를 선물해주기로 하고, 자매들이 세탁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외도중인 아버지가 딸들 결혼에 장롱은 꼭 해주셨기에 기본적인 가구는 준비가 된 셈이다.

나도 있던 돈을 긁어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사서 내 방에 한가득 쌓아놨었는데 새집에 옮기고 보니 표시도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릇, 냄비를 비롯한 식기류들이었으니 씽크대에 넣어두면 그만인 것들이다.

가전과 가구가 다 배송이 되기 전에 나는 남편과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언니에게 뒷정리를 부탁했다.




결혼하던 그날은 보기 드물게 눈이 많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온세상이 들떠 신이 난것 같았고, 신부인 나도 뭐가 뭔지 모르지만 흥분이 됐다.

그러나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친척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른세살의 새신랑인 남편도 기분이 많이 좋았는지 신부화장을 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떠드는 바람에 미용실 직원에게 한소리 듣고 쫓겨났다.


예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데 시아버님이 100만원을 주시면서 여비에 보태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좋아서 감사하다며 받았지만 남편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것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축의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남편 지인들의 축의금 단위는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그럴만도 했으리라.

시아버님은 신혼집도 얻어주지 않았고, 축의금도 모두 챙기셨으니 그정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시아버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야속하다.

평생 직장 한번 다닌 적이 없던 사람이 며느리를 보게 되니 체면이 안서서 결혼 즈음에는 아파트 경비일을 몇달 했었다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정말 시아버님이 너무 무시가 됐다.

그렇게 평생 집에서 놀면서 아들의 돈을 당연한듯 받아 쓰고, 그 큰돈을 받아 쓰면서도 아들의 신혼집 하나 장만해주지 않은 이기적인 부성애때문에 나도 시아버님과는 필요한 말 외에 말을 섞지 않았다.

물론 어릴때부터 천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활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텐데말이다.


아들이 결혼한 후로 매달 들어오던 돈줄이 끊어지니 시아버님은 멘붕이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생활비를 달라고 하기에는 당신이 너무 젊은 50대 초반이었으니 자존심도 상했을 것 같다.

내가 알아서 드렸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시댁이고 친정이고 생활비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모지랭이였다.

시아버님과 동갑인 친정엄마는 그때도 열심히 일을 하셨기에 50대의 나이는 일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결혼한지 한달정도 되었을까.

시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아무개가 결혼을 하니 축의금을 해야 한다며 돈을 보내라고 하셨다.

"네~ 보내드릴께요"했는데 화가 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그사람들 다 니들 결혼때 왔던 분이니까 니들이 부조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다.

왜 화를 내실까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신이 받아 쓰신 축의금을 나에게 갚으라며 화를 내신것이 생활비를 못 받는 것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인것 같다.

내가 그때 눈치를 못챈것이 다행스럽다.

알았더라면 사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을 것 같다.


나의 꿈 같은 신혼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돈이 좋은 나와 그런 나를 충족시키는 것이 행복했던 그남자와 동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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