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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05. 2024

행복 했었네 그땐...

[꽃길만 걷는 인생은 없다]

롱디로 1년을 보낸 남편은 결혼 후 한 달을 쉬었다.

일부러 휴가를 냈다고 했지만 그의 직업(미장)이 겨울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전임신 3개월만에 결혼을 했는데 공교롭게 남편에게는 가장 한가한 때를 선택한 셈이니 태어나기 전부터 아기가 벌써 효도를 했다고나 할까.


쉬는 한달동안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연애때 다니던 단골 포장마차에 가서 내가 잘먹던 꼼장어 한접시 먹고 오는것 외에는 공식적인 외출만 했다.

나는 씻고 화장하기 귀찮아서 나가지 않았고, 남편은 나와 함께 집에 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뒹굴뒹굴 누워서 사과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누워서 사과를 먹는 귀여운 여자랑 결혼할 줄 누가 알았겠어?"라고 말을 할 정도로 눈에 단단히 깍지를 쓰고 있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한건가 싶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아직 집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던 때라 연락 없이 시어머님이 오신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당황스러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잠시 기다리라며 문밖에 세워두고 이불을 개고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했는데 그때 어머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남편이 쉬는 한 달간 여러 번의 집들이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

내 친구들과 남편친구들.


집들이 전 남편은 나에게 따로 돈을 주면서 필요한 가전제품을 사다가 채워 놓으라고 했다.

남편이 보기에도 너무 허전하고 허접했던 모양이다.

"사람들한테 너 기죽으면 안 되잖아"라며 돈을 주는 남편을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정말 나는 결혼 잘했다.

세상 어떤 남자가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줄까.


남편이 준 돈으로 비디오를 비롯해 자잘 자잘한 가전제품들을 장만했다.

그때도 남편은 어떤 가전제품을 사는지, 얼마짜리를 사고 얼마를 썼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돈을 주면서

"너한테 주는 돈은 저금을 하는 느낌이 들어"라고 말을 했다.

그때 돈을 잘 모으고 재테크를 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되돌리고 싶은 삶의 안타까운 순간이 몇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때다.




처음 살던 신혼집에서 딸을 낳았다.

아기가 생기고 나니 짐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그 쪼끄만 애기 하나 짐이 우리 두 사람의 짐보다 더 많아져서 횡하던 원룸 거실까지 빽빽하게 짐이 찼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방이 두 개인 큰 빌라를 전세로 계약해 놓고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재 사는 곳보다 교통이 훨씬 좋은 신축빌라 4층이었다.

한마디로 남편은 내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다 들어주는 초능력자였다.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가 아마 남편이 사업을 할때였을 것이다.

미장이라는 기술로 그동안 일하며 배운 노하우로 작은 공사를 맡아서 했다.

사무실이 따로 없었기에 필요한 일은 집에서 모두 이루어졌고, 나는 남편이 하는 일의 경리를 봐주었다.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날엔 집이 정신이 없었다.

돈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계산해서 지급하고 정산이 끝나면 일꾼들을 데리고 근처 고깃집에서 술을 마셨다.

어린 딸이 있으니 집에서 사람을 맞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데다가 내가 그다지 음식솜씨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노임을 계산하고 남는 돈은 자연스럽게 내 주머니로 들어갔고, 남편은 애써 챙기지 않았다.

조금씩 돈이 모여지니 나도 그때부터는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임신을 했다.

산후어혈로 약을 먹는 바람에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았더니 바로 생리를 했고, 쉽게 임신이 된것 같다.

잠만 자면 임신을 하냐며 남편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번엔 아들 낳아야지?" 했다.

친정이 딸부잣집인데 언니가 시집을 가서 딸 둘을 낳고 나도 첫딸을 낳았으니 은연중에 아들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

남편은 빨간 고추 모빌을 누가 주었다면서 그걸 차에 달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남편의 차를 탈 때마다 그 모빌을 보며 정말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무거운 부담을 가지게 됐다.


"하나님. 아들만 주면 정말 오후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잘 드릴게요."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기도도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이듬해 귀여운 아들을 주셨다.

남편은 그날 너무 좋아서 병원 간호사에게 금일봉을 주고, 친정엄마는 분만실 앞에서 손뼉 치며 환호성까지 질렀다고 한다.

덕분에 병원에서는 담당 간호사의 특별한 배려로 아주 편한 입원생활을 했다.

그 때가 내 행복의 최고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지.

꽃길만 걷는 인생은 없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파른 내리막길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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