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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Jun 14. 2022

36. 닭가슴살 큐브로 만드는 라구 소스

강인한 다리가 필요합니다.

 방울토마토가 넘쳐 난다! 내 자취요리 대부분이 방울토마토인 기분이 없잖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집에 거의 상비하다시피 있는 채소라 맨날 찾아보는 레시피가 토마토 레시피이기도 하다. 최근에 유난히 주말에 약속이 많았던 데다가, 약속이 없는 날에는 메인 쉐프가 집에 계셔서 내가 요리 할 일이 없기도 했는데, 우리 집 메인 쉐프는 토마토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즉, 방울토마토가 또 쌓였다! 미루고 미루던 어느 평일 저녁, 회사가 가기 싫어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라구소스를 만들었다.


 지난 번 만든 라구는 이래저래 집에 있는 야채들에 다진 고기를 사와서 만들었는데, 검색해보니 제대로 된 라구 소스에는 '당근, 양파, 셀러리'가 필수라더라. 난생 처음 마트에서 셀러리라는 재료를 오로지 라구를 만들기 위해 구매했다. 저번에 라페를 만드느라 다 떨어진 당근도 하나 샀다. 대신, 고기는 냉장고에 왕창 방치된 닭가슴살을 써 보기로 했다. 냉털이다! 언니는 재료를 듣고 이래저래 질색했지만, 어느 블로그에선가 괜찮게 해 먹었다는 글을 봤어서 강행했다. 여차하면 혼자 먹지 뭐.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온갖 재료들을 다 다듬어서 다지기 기계로 갈고, 팬에 볶아 익힌 뒤 물을 좀 넣고 잘 졸이면 된다. 계량은... 냉장고 털기가 목적이라 딱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먹지 뭐. 당근, 샐러리, 양파 비율만 1대 1대 1에서 양파를 좀 더 쓰는 사람들이 있길래 대애충 비슷한 수준에서 양파를 조금 더하려고 했다. 마늘은 귀찮아서 다지지도 않았다. 익히면서 적당히 으깼다.


 방울토마토는 더 대충 했다. 저번에는 데쳐서 껍질을 벗겼는데, 어차피 내가 먹을 거니까 패스하고 그냥 갈았다. 처음에는 1번 사진만큼만 넣어서 했는데, 막상 넣으니 적어보여서 급하게 좀 더 갈아서 추가했다.


 닭가슴살만 봉지에 적혀 있어서 계량을 알았다. 100g 2봉과 70g 1봉으로 총 270g! 종류도 다 달랐는데, 간이 조금 되어 있어서 부담이 적었다. 색이 다 다르지만 어차피 토마토가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겠지 싶어서 무시했다. 퍽퍽한 게 싫어서 최대한 곱게 갈려고 노력했다.


 닭가슴살을 갈 때쯤 양파 먼저 볶기 시작했다. 투명해질 때까지라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중에 라자냐 레시피 참고하려고 보니까 그냥 야채 다 들이붓고 한 번에 볶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도 나름 비포 애프터로 보니까 색이 꽤 변해 있다! 갈면서 조금씩 섞인 야채는 어차피 섞을 거라 무시했다. 양파가 익고 당근과 셀러리, 마늘 투하!


 그러다 대충 당근이 익었나- 싶을 때 쯤 닭가슴살을 넣었다. 사실 당근이 익었는지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충 지칠 쯤에 넣었다. 간을 좀 하라던데, 간이 되어 있는 고기라 조금만 넣고 후추를 잔뜩 넣었다. 이 상태로는 별로 볶지 않고 잘 섞어만 주었다.


 그러다 방울토마토 간 걸 넣고, 물을 대충 500ml려나-하고 넣고, 고춧가루가 없어서 케이앤페퍼 분말, 치킨스톡 2조각, 월계수잎 5장(라구를 위해 샀다), 토마토 껍질가루(껍질을 전자렌지에 7분 돌려 만들었다)를 넣고 잘 섞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고춧가루가 케이앤페퍼 분말도 좀 넣고, 친구 추천으로 산 이탈리안 시즈닝도 잔뜩 갈아 넣었다. 중간중간 간을 좀 봤는데, 다 졸기 전에 먹어 본 언니가 풍미가 부족하다고 해서 조금 주눅들었지만 뭐 한 것 없이 푸욱 1시간 반 넘게 졸여 주었더니(재료준비부터 총 2시간 걸렸다) 없던 풍미가 생겼다.


 국물이 사라질 때까지 볶은 결과물은 짜잔. 락앤락 2개가 되었다! 그럴한 맛있는 냄새에 당장 먹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이 11시가 되어 눈이 감기기 직전이라 급하게 아이스팩과 미니선풍기로 식혀서 냉장고에 넣었다. 서양에서는 김장처럼 해서 냉동실에 소분해 넣고 내내 먹는다고 하던데, 게을러서 소분은 커녕 대애충 나눠 냉장고에 넣었다. 아, 한입 먹어본 언니가 인정한 맛이었다! 닭가슴살 냄새도 사라져서 뿌듯했다. 그치만 다리가 너무 아팠다. 바보같이 계속 저어야 하는 줄 알고 2시간 내내 서 있었다ㅠㅠ 그치만 맛있으니까! 뿌듯하다!


 이게 뭐라고 쓰는 데 일주일이 걸렸는지! 게으름을 탓해본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괴롭지만 오후도 마저 잘 보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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