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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Feb 06. 2022

연희동에 찾아와요, CHAEG BAR(책바)

<바다의 뚜껑 - 요시모토 바나나>, 조여래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j697NmeYm90

연희동에 찾아와요 - 조여래




오늘 연희동에 다녀왔어요. 사람마다 휴일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저의 경우 보통 4호선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혼자 놉니다. 주말이라고 늦잠만 자면 뭔가.. 일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아서, 주말에 더 열심히 놀자! 하지만 사실 집콕하는 경우가 많아요. 딱히 도전하는걸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혼자 정말 잘 놉니다. 귀걸이도 만들어 팔고, 갑자기 자수 두기에 빠져서 동대문 부자재 상가도 엄청 갔었어요. 감자가 많은 날에는 감자칩 무한생성도 하고요, 영화에서 좋아진 곡이 있으면 주말 내내 피아노 연습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행복하게 휴일을 보내는 방법은 예쁜 카페를 찾아서,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고 오는 거예요.


정말 친한 친구들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저라서 이런 휴일이 가능한 것 같아, 가끔 친구들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친한 친구들이 서운해하지 않아서 더 오래, 길게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2022년 2월의 책바!


월급이란 걸 받아보면, 한 달에 한 번씩 내 휴일을 위해 갈 거야! 했던 최애 공간이 있습니다. 학생으로 가기에는 가격대가 있는 곳이라 (눈물) 많이 가지 못했지만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오늘 다녀왔어요! 연희동에 있는 책바(CHAEG BAR)입니다. 여길 제가 얼마나 좋아하냐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갈까 봐... 소중한 사람들만 알면 좋겠어서요.. 너무너무 좋아서 기억하고 싶을 때 스토리에만 살짝 올려놓습니다. 일주일이 너무 힘들 때 꺼내보려고요!


2월에는 바 자리에 앉았다

책과 재즈, 칵테일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에요. 마실 술을 한잔 시키고, 서가에 있는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습니다. 메뉴판도 문학적이에요. 그냥 보드카 토닉이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마셨던 보드카 토닉입니다. 책의 문장도 메뉴판에 적혀있고요. 또, 재즈 노래가 주로 나오는데 가끔 챗 베이커 노래가 나오면 모르는 척 혼자 엄청 행복해해요. 오늘은 마지막에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을 틀어주셔서 아 너무 행복한 토요일이야! 했습니다.


2019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

책과 칵테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는 만큼 책바에는 두 개 프로그램이 있는데, '책바 문학상'과 '빌보드 차트'입니다. 선정되면 책바에서 1년에 한 번씩 내놓는 '우리가 술을 마시며 쓴 글' 책에 글이 인쇄돼요. 책바 문학상 수상자라면 인세도 제공됩니다! 2월 빌보드 주제는 '불안'이었는데, 저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오려다 보니 참여는 못했어요 (다음 달에도 갈 거니까..)


오늘 책바에 가면서 무한 반복한 인디 노래는 조여래의 '연희동에 찾아와요'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 이예요.





마음이 부서지면
이곳으로 와 머물러요


'연희동에 찾아와요'의 가사입니다. 어떤 한 공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고 가끔 느껴요. 첫 회사 자리나, 알바할 때 잠깐 쉬었던 공간부터 고등학생 때 야자실까지, 사진만 봐도 그때 기억이 막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정확히 내가 경험한 그 공간으로 한 번만 다시 가보고 싶어! 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죠.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던 사람이나, 공간을 채우던 물건들은 내가 변한 만큼 사라지고 영영 없어지기도 하니까요.


바다의 뚜껑의 주인공 마리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공간이 모두 변해버립니다. 고향인 바닷가 마을로 흘러들어온 큰 자본 때문에요. 처음 수영을 배우고, 가족들과의 추억이 있는 호텔은 고급 호텔에 밀려 사라지고 대중식당이나 불꽃 축제도 없어져요.


그런 추억마저 무언가에 짓밟힌 느낌이었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돈. 애정 없이 뿌려진 돈 탓에, 이 동네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바깥쪽에서 갑자기 밀려든 돈의 흐름은 동네 사람들이 생각해 낸 귀여운 발상이며 소박하게 간직해 온 소중한 것을 모두 쓸어가 버리고 말았다. 뒤에는 비참함만이 남은 것 같다. 제 힘을 쏟아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를 가꾸는 것을, 언젠가부터 모두가 포기하고 그만둔 것 같다.       


마리는 추억이 무언가에 짓밟혔다고 느낍니다. 고향인 바닷가 마을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해변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솔숲에 조그만 빙수 가게를 열어요. 가게를 연 첫여름, 마리는 잘 알지 못했던 엄마 친구 딸 '하지메'와 여름을 보내게 됩니다. 상당히 부자였던 하지메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돈 때문에 친척들 간 끔찍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일로 하지메는 잠시 바다마을에 오게 된 거죠. 하지메는 마리의 빙수가게 오픈을 도와주고, 둘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주말에 가볍게 완독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제가 사랑하는 요시모토의 책인 만큼 남겨두면 좋을 문장이 많아요. 특히 '돈'에 관련해서요.  


"(...) 나는 돈이 많으면 불안해지는데, 돈이 없다고 불안해지는 인생은 상상이 안 돼. 그래도 역시 돈은 좋아. 뭔가를 자유롭게 얻기 위해 필요한 멋진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잘 생각해보자. 돈은 중요한 거잖아. 우리 할머니 식물 모종 살 때만은 호사스러웠어. 집 안에 잘 뭘 두지도 않았고, 옷도 잘 갈무리해서 오래 입는 편이었고. 그래도 식자재에는 꽤 돈을 들였는데, 먼 곳에다 주문하는 일은 역시 모종밖에 없었던 것 같아. (...) 그렇잖아, 돈이 아주 많다고 해서 뭘 할 수 있겠어?"

"지금보다 넓은 집에 살고,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지 않을까?"

"거 봐, 그 정도잖아..."
(...)
"가족이 있고, 할 일도 많고, 이 세상에 자기 혼자 절박하게 서 있는 게 아니라면, 다들 돈이 그렇게 많이는 필요하지 않을 거야. 인생에 부족한 게 있거나 애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돈이 크게 부각되는 거 아닐까."

살면서 돈은 중요하죠. 연봉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돈을 어디에 쓸 건지가 더 중요하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돈을 버느라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통장 잔고는 늘어나는데 정작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한다는 기사를 읽고, 아 나는 그런 멍청한 어른은 되기 싫어! 했었어요. 식물 모종 살 때만은 호사스러웠다는 하지메의 할머니처럼, 내가 번 돈을 어디에 쓸 때 내가 행복한지 알아내는 일이, 올라간 연봉 숫자보다 더 소중할 것 같아요.


마지막 대사처럼 인생에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 애정적인 결핍이나 자신에 대한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더 돈을 중요시한다는 건 백번 공감해요. 돈을 어디에 쓸 때 나 자신이 행복한 지 모르니까, 남들에 휩쓸려서 한정판! 고가! 명품 소비! 열풍이 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빠가 훌륭하시네"

"응, 늘 손해만 보기는 해도. 소심하고, 싸우지 않고, 집착도 없고, 그리고 한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타입이야. (..) 그런 사람이 드라마에만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한다니까. 이지로에 집에 살게 되면 회사에 다니기도 힘들 테지만, 주말에는 낚시나 공예 같은 취미 생활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것이 아빠 나름의 복수가 되겠지.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즐겁게 살 태고, 그 집에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바다의 풍경과 건어물과 맑은 공기를 즐길 거야. 나는 그런 아빠의 딸이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 탐욕스럽지 않은 남자는 드물잖아."

나도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한 대사입니다. 집착도 없고, 싸우지 않고, 한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타입은 제가 바라는 제 모습이기도 해요.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많이 읽고, 생각하고, 또 상처받는 시간이 많아야 하겠지만요.

그리고 벌어놓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찬찬히 고민하는 일도 이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책바에서 커피 밀크 칵테일도 마시고 책을 읽다 보니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어서, 무려 초콜릿 플레터를 추가로 주문했어요. 시급 6000원 알바를 할 때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야금야금 초콜릿도 먹고 칵테일도 먹고 책도 읽을 수 있다니! 돈 버는 건 좋은 일이야~ 했습니다.


책바에서 빌려 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오늘 책바에서 완독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그냥 사버렸어요. 옛날 어느 도서관에서 읽었을 때, 내가 시몽 나이가 되면 이 책 다시 읽어보자! 했었는데 어느덧 제가 시몽 나이거든요. 읽다 보니 생각나고 빌려주고 싶은 사람이 생겨서 사버렸습니다. 약간 과소비 느낌이 있지만? 저는 돈을 버니까 사도 괜찮잖아요? (인턴 나부랭이지만) 표지가 샤갈이라서 샀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봅니다.


저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책바에 가려고 해요.  그리고 갈 때마다 조여래의 '연희동에 찾아와요'를 들을 것 같아요.


'시간이 멈춘 듯이 이곳은 영원할 거예요' 연희동에 찾아와요 노래 가사처럼, 책바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면 좋겠네요. 제가 마흔이 되고 아가 엄마가 돼도 책바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오늘이 생각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책바가 사라지지 않게, 매달 첫 주 토요일마다 저는 과소비를 할 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데이트를 연희동에서 하자고 하거나, 책바에 같이 가자고 한다면 그건 당신을 정말 정말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바에 같이 가자고 한 사람들, 너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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