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이예린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5veuMLnly88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생기면, 말투나 행동이 전염된다는 걸 굳게 믿는 편이에요. 라오스에서 3주간 해외봉사를 했을 때, 제가 서른 명 남짓의 단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게 만든 말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였습니다. 이상한 사람이야! 는 굉장히! 중의를 넘어서서 많은 의미가 담길 수 있어요. 귀여운 이상한 사람도 있고,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지? 저런 말을 하지? 하는 이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조심하는 제가 찾은 나름의? 타협적인 표현이에요.
오늘 듣는 인디 노래는 '사랑은 이상하고 사람은 모르겠어', 이예린의 노래입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산문집이에요.
수많은 관계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자꾸 무너지는 걸까.
결국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사랑은 이상하고, 사람은 모르겠어' 앨범 소개 글입니다. 저는 가까운 사람이 냉소적으로 말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던 제게 상처를 줬을 때 이 노래를 찾아들어요. 우울한 감정일 때 좀 더 담담하게 생각하고 싶으면 듣는 노래입니다. 더 우울해지려고 굴 파고 들어가는걸 어느 정도 방지해주는 노래랄까요? 예린 님 목소리 덕분에요!
이상한 사람은 많고, 저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공통적인 '사람'이 가장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는 타인의 상처에는 쉽게 공감하면서, 자신이 준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사람에게서 보이는 가장 이상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정확히 짚어준 글을 어제 읽었어요.
극장에서는 태연한 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자신이 직접 행하는 악덕에는 무감각해진다.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슬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한다. 이 경우 타인의 슬픔은 내가 어떤 도덕적 자기만족을 느끼며 공감을 시도할 만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추궁하고 심문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받은 상처에는 정말 크게 공감하면서, 정작 내가 주고 있는 상처는 작디작으니 이런 거에 상처받는 네가 문제야! 했던 적이 있어요. 상처는 상대적이고, 공감이 불가능했다면 차라리 말보다는 안아주는 행동이 나았겠죠. 하지만 상대방의 슬픔이 나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저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큰 상처를 주고, 크기는 점점 벌어지고요.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이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서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사람은 이상하고, 에 대한 해답이 되는 문단이에요. 인간 존재 자체가 결함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쫌 이상하다! 작가의 말처럼 인간이 심장이라면, 인간은 자신밖에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여기서 정말 정말! 사람이 이상한 게! 내가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에 슬퍼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준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을 보고 그게 뭐가 그렇게 아파! 왜 이렇게 나약해! 하면서 냉소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제가 준 상처에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을 슬퍼할 수도 있다는 거죠. 공감과 이해도 선택의 문제니까요.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사랑은 모르겠어, 에 대한 해답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전히 저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꽁꽁 숨겨놓은 가족에 대한 사랑은 없어질 때가 많고, 아파할 바에는 멀리 던져놓을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요. 살아온 인생이 달라서 아마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일을 시도하는 과정이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설령 그 과정이 슬프고 후회된다고 해도요. 어느 지점에서 상처가 슬픔이 됐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내가 먼저 묻고 찬찬히 살펴보는 일이요.
진짜! 사람은! 너무 이상해! 요즘 세상도! 너무 이상하고! 나는 사랑도 모르겠어!
싶을 때 1시간 반복 재생하면서 듣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는 건 어떨까요?
아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그렇게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 같아요. 노래를 많이 들어주세요.
이예린 유명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