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구름 - 프랑수아즈 사강, Blue room - Chet baker
https://www.youtube.com/watch?v=bkhso0Re_y8
지난 주말 오랜만에 이프온리 (2004)를 다시 봤어요. 한 영화를 다시 보면, 안보였던 대사들이 가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사만다와 이안이 헤어질 때, 사만다의 대사와 표정이 너무 크게 보여서 몇 번 반복해서 봤어요. 바로 이 부분!
널 좋아해, 로 번역됐지만 "I adore you" "I don't wanna be adored! I wanna be loved!"입니다.
Adore은 프랑스어로도 Adorable로 인데, love와는 명백히 다르죠. 사랑보다 예뻐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예뻐하는 모든 걸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다름에 집중해서 이프온리를 보면 작가가 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지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전은 없으니 최선을 다 해라! 교훈을 주는 영화라 좋아해요. 굳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서 좋기도 하고요.
Adore과 Love를 생각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문장이 떠올라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신기한 구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생각할 때는 쳇 베이커 음악이 어울려서 같이 읽고 들었어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신기한 구름>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으로는 쳇 베이커의 Blue room을 추천해요!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랑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손안에 든 먹이를 조금씩 갉아먹었을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책은 20대 젊은 부부인 조제와 앨런, 두 사람의 휴가를 다루며 시작됩니다. 얼핏 보면 둘의 관계는 앨런의 지나친 집착이 문제인 것처럼 보여요. 함께 여행하던 부부 중 남편인 '브랜든'이 조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의 둘의 대화입니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브랜든의 매력은 뭘까?"
"그런 거 없어."
"생각해보자고. (...) 브랜든은 잘생겼고, 건실하고, 믿음직스럽잖아. 현재 키라고스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남자야. (...) 아무 대꾸가 없네. 당신은 이런 장면이 상상 안 돼? 그 남자와 자는 것도?"
"안 돼. 바람직한 일 같지도 않고."
"브랜든이 당신을 난처하게 하다면, 그걸 그에게 지나치게 감출 필요는 없어. 당신이 해변에서 불쌍한 이브를 나와 함께 버려두고 멋지게 그를 데려갔잖아. 그때 이브가 서글프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당신들 두 사람을 바라보더라."
"난 이브에게 상처 주지 않았어. 그녀는 나를 신뢰해. 브랜든도 그렇고. 그들은 내가 두 팔 벌리고 남자만 기다리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정상이야."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을 떠올려봐, 조제.
'사람은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거야. 난 그 누구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한 적이 없어.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고' 기억나?"
둘은 늘 이런 식으로 대화합니다. 화려한 매력에 조제를 늘 예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남편인 앨런은 질투하면서도 어딘지 자랑스러워해요. 말꼬리를 잡아서 대화하고, 조제가 감정적으로 지쳐 떨어질 때까지 '그 남자'와의 감정적 교류를 문제 삼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앨런이 명백하게 이상해! 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조제의 행동이 더 이해되지 않아요. 여행 중 우연히 혼자 타게 된 배에서 외도를 하고, 충동적으로 외도를 한 사실을 보란 듯이 앨런에게 알립니다. 휴가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가 지내던 중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프랑스로 도망가 버리기도 해요.
프랑스로 도망갔을 때, 조제는 우연히 옛날 자신에게 반했었던 베르나르와 만납니다. 그를 보고 그녀는 갑자기 가족을, 과거를 되찾은 기분이 들면서 그녀 자신을 되찾은 기분을 느껴요. 둘의 대화가 아주 재밌습니다.
“너는 어떻게 지내? 네 남편은? 미국인이야?”
“응”
“친절하고, 성실하고, 침착하고, 너를 열렬히 사랑해?”
“그렇다고 생각했어.”
“심술 사납고, 괴상하고, 잔인하고, 경솔하고, 난폭해?”
“그것도 아니야.”
베르나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 말 잘 들어봐, 조제. 난 너에게 극단적인 두 유형의 남자상을 그려준 거야. 네가 희대의 괴상한 녀석을 만났다 해도 난 놀라지 않아. 하지만 설명 좀 해봐.”
“그게.... 그 사람은....” 조제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조제가 울기 시작해서, 저는 조제라는 인물을 더 생각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예쁨 받고, 그 예쁨을 어느 정도 무기로 삼아 결혼 생활을 돌아보지 않는 철없는 여자! 정도로 보였는데 그녀 스스로 잘못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앨런을 사랑하지만, 관계의 모든 잘못을 앨런에게 돌리는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거죠. 그 사실을 알고 둘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생에 달콤한 환상이 조금도 없으며, 현실적이고 담담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나 그 사람하고 헤어질 거야.”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 사랑해?”
“아니.”
“그럼 이제 그만 울어. 아무 말 말고 뭐 좀 마셔. 이러다 완전히 탈수 상태가 되겠어. 그런데 조제, 더 예뻐졌다. 알겠지만.”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언제 떠나?”
“열흘 뒤에. 나랑 같이 떠날래?”
“응. 그동안 날 외면하지 마. 지나친 부탁은 아니겠지.”
그리고 바로 자신을 좋아했었던, 베르나르에게 자신을 기대기 시작합니다. 베르나르라는 인물도 재밌는데, 조제의 남편이 프랑스로 가버린 조제를 찾아오자 그를 돌봐줘요. '앨런이 나에게 찰싹 붙어서 안 떨어져. 더는 감당 못 하겠어! 2주 전부터 네 남편의 손을 잡고 다니는 나를... 넌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상상 초월이라고!' 합니다. 베르나르는 앨런이 조제를 찾는 걸 도와주고,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해줘요. 이 모든 게 조제를 예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비겁한 거야. 내 인생을 결정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어수선하고 우스꽝스러운 잡동사니 같았다. (....)
그녀는 옷걸이 하나를 가져와 거기에 원피스를 정성 들여 걸었다. 예쁜 원피스였고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랑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손안에 든 먹이를 조금씩 갉아먹었을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작가가 조제를 간단하게 정의 내려주는 부분인,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입니다. 뜬금없이 옷걸이에 원피스를 거는 부분이 나와서, 작가가 조제를 원피스에 비유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조제는, 결국 비겁한 자신을 인정하게 되죠. 소설 마지막 조제의 대사는 "매번 비슷할 거야. 게임은 끝났어."입니다. 사강의 소설 결말답다! 싶죠.
조제는 부유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이십 대 여성으로, 파리에서 화려한 삶을 즐기다 결혼한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세 번째 소설인 <한 달 후, 일 년 후>에 등장했던 여주인공인데, 다섯 번째 소설인 <신기한 구름> 에도 등장하는 걸로 봐서 사강이 조제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당했을 당시 기자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사강은 프랑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유한 귀족학교를 다녔고, 대학시절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 문학적,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작가가 됐습니다.
부유층, 그리고 젊은 날 성공한 그녀는 파티와 자동차, 마약, 도박을 즐겼습니다. 얼마나 심했냐면, 카지노에서 마약 중독으로 그녀를 출입금지시켜버려요.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들기도 했고요, 빚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78년 한 극우 정치가는 사강을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 고 주장하기까지 해요. 특이한 교우 관계, 연애, 결혼, 법정 출두 등 그녀의 삶엔 얼룩이 많지만 저는 그녀가 남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J'ai le droit de me detruire)” 가 완벽하게 그녀의 삶을 설명한다고 믿어요.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니그레트 소스냐, 네덜란든식 소스냐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평생 두 번 결혼했지만 둘 다 이혼했고, 이혼하면서도 작가답게 말을 남기죠. 아이까지 있었던,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며 남긴 말입니다. 너무 솔직하고 멋진 여자 아닌가요? 얼핏, 충동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신념을 팔거나 인색하지 않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대우합니다. 대통령 미테랑은 기다리게 했지만, 말년의 샤르트르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고 반쯤 눈이 먼 그를 위해 접시의 고기를 썰어주었다고 해요.
사강의 책을 읽으면 늘 쳇 베이커 노래를 틀어놓는데, 두 사람의 삶이 어딘가 닮아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1950~60년대 서구 마약의 시대를 함께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이렇게 잘 실현한 가수는, 제 기준 쳇 베이커이기 때문입니다.
마약에 얼룩진 삶을 살았고, 세 번 결혼했고 모두 이혼합니다. 재기를 위해 유럽에서 연주하던 시기,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머물던 그는 공연 당일 새벽 호텔 2층에서 떨어진 채 발견됩니다. 미국으로 보내진 몸에서는 다량의 코카인과 헤로인이 발견되고요. 끝까지 정말 자기를 파괴한! 파괴 왕! 그런데 하루키 말처럼 음악에서는 청춘이 느껴지죠.
다시 이프온리로 돌아와서! '사랑받고 싶다'와 '예쁨 받고 싶다'. '나는 너를 예뻐해.'와 '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한다'와 '예뻐한다'의 차이를 생각해봤어요. 세상은 이분법이 아니니,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지만 제 기준! 사랑은 나를 파괴할 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건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고, 무한한 예쁨보다는 엄청난 상처가 삶에 주는 영향이 더 크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예뻐하는 것과 사랑하는 걸 어느 정도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린 왕자 별의 '그' 장미는 사랑이고, 어린 왕자가 지구를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장미들은 '예쁨' 이잖아요. 사람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다 조금씩 이상하고, 누구나 말과 행동이 안 맞는 지점들이 있지만 세상은! 힘드니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고, 그 사람으로 평생 살아볼 수 없으니까. 정답이랄 게 없는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니, 제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상냥한 사람들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손가락질하지 않고,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치부를 애써 들춰보지 않고, 타인의 슬픔을 감상벽 없이 들어주는 그런 상냥함이요. 이런 상냥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본인의 상처와 어느 정도 파괴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저는 사랑해요. 가족 간의 폭력, 여기저기에서 당했던 멸시, 가까운 사람의 죽음, 병들이 파괴한 나는 이런 사람이야, 여기가 조금 부서진 사람이야! 하면서 솔직하게 드러내 주는 사람들이요. 이런 솔직하고 상냥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까워지면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어서 파괴된 서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반세기가 지나도 사랑받는 쳇 베이커의 노래나, 사강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같습니다. 어느 정도 파괴된 그들의 모습을 알고, 그 지점을 노래에서 또 책 귀퉁이의 글귀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요. 예쁜 책이나 음악은 많죠. 곰돌이 푸! 행복한 내일은 있어! 책도 예쁘고, 아이돌의 노래들도 예쁘지만 과연 반세기 이상.. 사랑받을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네~! ( 푸랑 루피는 귀엽지만 예뻐해! ) 나는 안 사랑해! 미안!
조제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예뻐한게 맞네요. 앨런도, 수많은 남자들도 그녀를 예뻐했고요. 고민이 많은 봄이지만, 이런 봄도 좋습니다. 쳇 베이커를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어주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 좋고 오늘 추천한 <신기한 구름>도 좋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