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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Apr 07. 2023

배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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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남기지 않았어?"


1년 전 일이다. 내가 쓴 내 이야기, 내 자본, 내가 모은 팀으로 연극을 한 편 올렸다.

특별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동안, 비둘기 역할부터 시작해 극단의 주연급으로 올라가기까지 주마등처럼 스치는 20대의 지난 시간을 나는 거꾸로 되돌아갔다.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 고정된 연습시간 때문에 알바 시간이 부족해 생활비를 대출받았던 일, 극단 여건이 어려워 단원 중 한 명이 다니던 교회에서 늦은 밤 연습 하던 일, 잠 줄여가며 공장일 하고 퇴근하면 공연 시간 맞추느라 대학로 가는 지하철에서 전전긍긍했던 일, 그러다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연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던 일.

그리고 2년 간의 공백기를 가지고 복귀했던 작품이, 내가 쓴 나의 이야기. 연출로서 나의 데뷔작이었다.

연출로서 내가 첫 번째로 하고 싶었던 일은, 배우와 스텝들에게 돈을 주고 싶었다.

그전까지 꽤 많은 연극 작품에 출연한 것 같기도 한데, 연극으로 번 수입이 나는 제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백기 동안 모은 모든 자본을, 사실상 빚을 쥐어짜서 공연에 투자했다.

연습을 시작할 때 코로나 일일 감염자수가 다섯 자리를, 공연이 올라가는 당일에 여섯 자리를 돌파했다.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일은, 배우들이 즐겼으면 했다.

연출의 역할을 축소해서 배우들이 상상하는 그림을 더 살려 무대에서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공연을 마무리하고 정신없이 며칠이 지난 후, 배우중 한 명과 통화했던 게 기억난다.

그 공연에서 데뷔를 하게 된 배우였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며 근근이 연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친구였다.

기회를 주고 싶었다.

연기를 연습하는 것과 실제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만, 나는 이 배우가 잘 적응하고 무대에 올라서, 맡은 배역의 날개를 달고 그 어떤 배우보다 자유롭게 날아다닐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본인이 추구하는 연기와 맡은 인물 간의 벽을 끝내 허물지 못하고, 죽음처럼 생기를 잃은 채 안타깝게 무대에서 내려왔다. 관객의 기운에 압도되어 연습 과정에 없었던 절제되지 않은 테크닉을 시도하던 이 친구의 모습이 솔직히 나도 실망스러웠다.


"알았어. 형이 뭔 말하는지 다 알겠어. 내가 죽일 놈이야. 그래도 형은 이번에 공연해서 많이 남기지 않았어?"



음습한 4월의 아침이 구도시의 풍경을 휘감았다.

쓸쓸하고 황량한 기분으로 공연이 끝났던 그날의 기록을 들춰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그래. 오랜만이야. 금세 잊히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찰나의 순간이.‘


그래. 질문자의 의도가 어떠했든, 사실이지 않은가.

많이 잃고, 많은 것을 남겼다.

더 무엇을 바라는가.

애초에 자기 마음을 헤아리는 건 자기 자신 뿐인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지 않았는가.

덧붙여 되묻자면

'무엇을 잃었는가?'

처지보다 좋은 것을 "많이 남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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