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이 될 무렵,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제대로 수업을 듣지 못했다. 강의 도중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온 적도 있고, 아예 강의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적도 많다.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과제나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많다. 과제는커녕 매일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깊이의 우울이 나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간 우울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수성이 풍부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우울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느꼈던 기분과는 전혀 달랐다. 단순히 슬프고 속상한 것이 아니라, 실체를 알 수 없는 어떠한 존재가 나를 아주 깊고 무서운 곳으로 계속해서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기분이 좋아질 만한 것들을 무작정 해봤다. 당시 나는 힙합을 좋아했기에 힙합 공연을 무작정 예매했다. 공연에 가서는 땀을 흠뻑 흘리며 열심히 놀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더 커진 허탈함을 가지고 와야 했다.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한 적도 많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것까지만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정신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참 많은 것들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이것도 개선의 희망이 남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시도를 해봐도 뜻대로 되지 않자 나는 점점 더 희망을 잃었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의지를 잃었다.
2018년 여름, 프랑스에서 계절학기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사실 말이 계절학기지 첫 유럽 여행의 기회였다. 직감적으로 이게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다. 여행을 갔다 와서도 기분 전환이 안된다면,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에 도착한 날, 개선문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선문에서 떨어져서 죽는다면 한국 뉴스에 나올까? 프랑스 뉴스에는 나올까? 죽긴 할까? 평소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러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진 못했지만, 중요한 건 이미 죽음을 향한 마음이 내 머리를 장악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함께 간 친구와 함께 살게 되어 조금 덜 위험한 날들을 보냈다. 수업 후 친구와 함께 유명 관광지에도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도 오묘한 무기력한 감정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더 강하고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수업 후 숙소에만 있었을 것 같다. 실제로 주말에 혼자 네덜란드에 간 적이 있는데, 예약을 했으니 어찌어찌 가긴 갔지만 너무 무기력해서 1박 2일 내내 거의 숙소에만 있었다. 아무튼 맹맹한 유럽 여행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일이 다가올수록, 어서 한국에 가서 정신과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각종 우울증 테스트를 해봤다. 인터넷에서 무작정 우울증 테스트라고 검색을 한 뒤, 닥치는 대로 나오는 모든 것들을 해봤다. 어떤 것은 신뢰도가 낮아 보였고, 어떤 것은 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것이었다. 각 테스트마다 문항의 내용이나 개수가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으며, 대부분의 검사에서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테스트를 클릭했다. ‘마지막으로 이것까지만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정신과에 가야지’리고 생각하던 나는 우울증 테스트를 하는 순간에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보고’를 외치고 있었다. 높은 점수로 나의 고통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과 낮은 점수로 나의 평범함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난생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2018년 가을, 학교 근처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약간 긴장되긴 했지만 막상 통화가 시작되니 마치 음식점에 예약 전화를 하듯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예약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난생처음으로 나는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