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라는 곳에 갔다. 병원에 대한 첫인상은, 생각보다 그냥 병원 같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신과도 병원이니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난 어떤 모습을 상상했던 것일까? 병원에 함께 와본 지인들도 하나같이 생각보다 그냥 병원 같아서 신기하다는 말을 했다. 병원이면 병원이지 대체 ‘그냥 병원’이 뭐길래. 아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었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동안 다녔던 다른 과 병원에 비해 조금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 안에도 별다른 의료기기가 없다 보니 깔끔했다. 아울러 조금 실용적인 후기를 말하자면, 진료비 또한 특별히 비싸지 않다. 나의 경우 첫날은 검사 비용이 발생하여 약 5만 원 내외로 들었고, 그 이후로는 한 번 갈 때마다 약 값을 포함하여 약 만원 내외를 지불하고 있다. 물론 정신과 방문을 망설이게 만드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단지 돈이 많이 들 것이라 생각해 가지 않는 경우를 보면 참 안타깝다. 정신과 다니는 거, 생각보다 싸다.
병원에 들어가 데스크에 이름을 말하니 테스트지를 주셨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고 질문을 읽고 느끼는 대로 답변을 하라고 했다. 이미 가기 전 인터넷에서 너무 많은 검사들을 해봐서인지 익숙한 문항들이 꽤 있었다. 이후 간단한 검사 몇 개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환자 쪽에 있었던 갑 티슈였다. 진료 중 우는 사람이 많아서겠지. 물론 나도 첫날부터 그 휴지를 아주 많이 사용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죽고 싶어서요.”
선생님께 처음으로 한 말이다. 이후 한 말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저 말을 하던 순간은 똑똑히 기억난다. 할 말을 따로 준비하고 가지 않았었기에 그 이후에는 매우 두서없이 나의 힘들었던 감정과 증상을 나열했다. 사실 말하는 시간보다 운 시간이 더 길었다. 가기 전부터 예상했던 바지만,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약물치료를 권하셨다.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지 병원에 찾아와도 된다고 하셨다. 괜히 병원에 가서 더 상처받는 상황이 생기진 않을까, 용기를 내어 병원에 간 건데 더 좌절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선생님이 좋으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됐다. 병원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아, 진작 올 걸!’
이제 나에겐 약도 있고 선생님도 친절하시니,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치료를 시작한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글세, 진짜 뭐라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병원과 약이 나의 우울보다 힘이 셀까?’ 같은 생각을 하며 치료의 효과를 의심했다. 그래도 하지 말라는 것 하지 말고, 하라는 것 하며, 열심히 치료를 받아보리라 다짐하면서 당시 지내고 있던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돌아와 약 봉투를 보니 이제 정말 환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은 느낌이었는지 나쁜 느낌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참 이상한 생각인데, 내가 정말 우울증 환자가 맞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마치 약이 “너 그동안 힘들었던 거 맞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약 봉투에는 빠른 쾌유를 빈다는 말이 쓰여있었다. 그동안 받은 수많은 약 봉투에 쓰여있던 말인데, 그날 따라 그 말이 참 와닿았다. 여러 병에 걸려보았지만 이토록 빠른 쾌유를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 자신이 불쌍하고 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약까지 먹게 된 내가 싫기도 했다. 과연 이 약을 언제까지 먹게 될지 궁금했다.
2022년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 그리고 언제 병원을 졸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만약 그때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병원에 가던 날, 한 친구는 나에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응원을 해주었다. ‘정신과’와 ‘좋은 시간’은 왠지 조화롭지 않은 단어들 같지만 그 말이 어찌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을 보며 정신과에 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가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