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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땅콩 Jun 30. 2022

04. 우울증과 술 (1)

우울증과 음주의 상관관계

우울증 이야기를 하자면 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적어도 내 우울증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 우선 나는 원래 술을 좋아했다. 술자리도 꽤 좋아했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즐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건강하지 못한 음주가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우울증이 시작된 시기였을 것이다. 우선 술자리가 줄었고 ‘혼술’ 하는 날이 늘었다. 처음에는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꼭 술을 함께 마시는 나를 발견했다. 몇몇 사람들은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술자리는 좋아한다던데,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무기력증으로 인해 점점 술자리에 나가기 싫어졌지만 술을 마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술자리에 나갔다.

술을 마시는 빈도도 늘었지만,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도 점점 늘었다. 항상 주량 이상을 마셔서 필름이 끊기는 날이 잦아졌다. 그렇게 필름이 끊기고 일어나는 날이면 항상 죄책감과 후회에 시달렸다. 당연히 그 부정적인 감정은 우울감을 악화시켰다. 웃긴 건, 그 심해진 우울감은 나를 다시 술 앞으로 데려갔다.


"왜 술을 마셔요?"
"잊기 위해서야."
"뭘 잊고 싶은데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야."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게 나였다.


어느새 우울증과 술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 둘은 합심하여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우울해서 술을 마시는데, 술을 마시면 우울해졌다. 더 이상 술을 즐기고 있지 않았다. 술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재빨리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 마시다 보니 대화도 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술을 마시며 더 빨리 취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가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언제든 빨리 취할 수 있게 방에 도수가 높은 술을 구비해놓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부터 찾은 날도 있다.


실제로 음주와 우울증 간 관계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신 사람의 뇌는 세로토닌 분비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술이 분해되며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는 우울한 감정을 유발한다. 가뜩이나 술에 취해서 한 행동들이 다음 날 후회될 때가 많은데, 그러한 부정적 감정이 더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음주가 우울증 환자에게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음주는 충동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음주 후 판단력이 흐려지고 충동적으로 변한 경험이 많이들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판단을 술을 마신 후 한 적이 많다. 특히나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나에게 해롭거나 위험한 판단을 많이 했다. 다행히 아주 큰 일은 겪지 않았지만,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정신과에 처음 간 날,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약을 복용하는 동안 술을 마셔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시냐고 물어보셨다. 나의 술 이야기를 대강 말하니, 약간의 표정 변화와 함께 다음번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다음 진료일이 왔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공간에 알코올 중독 관련 책이 있길래 쓱 훑어봤다. 중간에 알코올 중독 자가 진단 문항이 있어서 해봤는데, 심각한 알코올 중독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조금 놀랐다. 문제가 있다고는 느꼈지만, 친구들에게 장난스레 ‘나 알코올 중독인 것 같아’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러한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적어도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다. 특히나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난 내가 술을 못 끊을 줄 알았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쉽게 9개월 간 술을 안 먹는 데 성공했다. 두세 달 정도가 지나니 이 기록을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어렵지 않게 금주를 했다. 9개월 후, 항우울제를 그만 먹게 되었다. 상태가 막 좋아지진 않았지만 처음 병원에 왔을 때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다고 하셨고, 더 이상 항우울제가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다. 나도 그에 동의해서 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그 말은 다시 술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인스타그램에서는 만화를 그려요. @peanuts_diar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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