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참 많이 내렸는데요 며칠 전 퇴근길에 비가 억수같이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들이 저도 모르게 asmr처럼 들리더라고요. 잠이 잘 안 올 때 종종 듣곤 하는 빗소리를 가만히 라이브로 듣고 있자니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화선지에 후드득 스며드는 먹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의 서예와 한국화에는 빠질 수 없는 붓과 먹이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은 워낙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하다 보니 붓은커녕 연필을 잡을 기회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서예학원에서 차분하게 붓글씨연습을 했던 향수에 젖어 잠시나마 여유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붓으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붓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요?
우선 물감이나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는 붓의 끝부분을 붓 촉이라고 하는데요 무려 15가지나 되는 동물의 털 심지어 사람의 털로도 붓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털이요?
네~ 너무 놀라지 마시고요.ㅎㅎ 우선 동물의 경우에는 염소털, 족제비, 청설모의 꼬리털, 너구리, 토끼, 돼지. 사슴, 소, 말, 개, 닭, 공작털까지 정말 다양한 동물의 털로 만들어지는데요 조사를 하면서 가장 좀 특이하고 귀여웠던 붓촉을 쥐수염으로 만든 붓이었습니다. 붓 명인님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시골에 쥐들이 많아서 쥐 잡는 날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쥐를 잔뜩 잡는 날이면 수염을 뽑아 붓을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시골에도 쥐들이 많이 없어서 쥐수염 붓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셨던 인모 붓은 100일쯤 되면 자연스럽게 빠지는 아기의 배냇머리를 모아서 만든 태모필이라고 합니다. 아기의 탄생을 기념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던 것이지요.
어떤 동물의 털이 가장 많이 쓰이나요?
양모필이라고 불리는 염소털과 황모필이라고 불리는 족제비 꼬리 털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요 주로 큰 글씨나 대형 작품에는 양모붓이 사용되고 비교적 짧은 황모붓은 주로 책에 쓰는 작은 글씨나 섬세한 민화나 채색에 많이 사용이 됩니다.
다양한 동물의 털로 만드는 붓. 출처 '붓 이야기 박물관'
붓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되죠?
우선 털을 선별을 하고 털의 유분기를 잘 빼는 것이 좋은 붓의 기준이 됩니다. 동물들이 우리 사람 같이 샴푸나 린스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기름기 빼주는 것이 핵심 기술인데요. 그렇다고 기름기를 너무 많이 빼면 붓의 수명이 너무 짧고 기름기를 안 빼면 먹물이나 물감이 잘 안 묻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이 철저한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럼 붓 명인이 계신가요?
계십니다. 붓을 만드시는 명인님을 필장이라고 부르는데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8분의 필장님이 한국을 대표하는 멋진 붓을 만들고 계십니다.
이 여덟 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필장님이 계시는데요. 춘천에서 3대째 붓을 만들고 계신 박경수 명장님이십니다. 박경수 명장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토대로 1974년부터 전통 붓을 제작하고 계시고 박 필장의 아들들도 무형문화재 춘천필장 이수자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내에 하나뿐인 붓 박물관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필장님이시면서 관장님이신 거죠.
무형문화재 춘천 필장 박경수 성생님. 사진 붓 이야기 박물관
어디에 있습니까?
네 2017년 춘천에 개관한 ‘붓 이야기 박물관’이라고 하는 곳인데요. 저도 최근에 다녀왔는데 청취자분들께도 꼭 추천을 드리고 싶은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특히 붓 이야기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붓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박경수 필장님께서 국내 최초로 기록 속에만 존재했던 닭의 털로 만든 계모필을 복원하시는 데 성공하셔서 국내유일의 다양한 색깔의 계모필을 감상하시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 깃털붓을 복원하시게 된 계기도 굉장히 특별합니다 "과거 제가 아끼던 앵무새가 죽었는데, 그 새를 기리고 간직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어요.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앵무새였기에 그 깃털로 붓을 만들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 기르던 앵무새 깃털붓을 만들었지요" 이를 계기로 전설로 남을 뻔했던 계모필의 복원에도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붓 체험도 가능하나요?
붓이야기 박물관에 가시면 나만의 붓 만들기, 박경수 필장과 함께하는 캘리그래피 체험등 다양한 붓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체험은 바로 '물서예'였습니다.
물서예가 뭐죠?
네 말 그대로 물로 쓰는 서예입니다. 저도 박물관에 가서 정말 신기해서 몇 번이고 체험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바쁜 일상생활에서 직접 먹을 갈아 쓰기도 어렵고 먹을 갈려면 벼루도 사야 하고 혹여나 먹이 옷에 묻거나 엎질러지기라도 하면 빨기도 어렵고 닦기도 어려워서 고안하신 체험이라고 합니다.
특수필름으로 제작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화선지를 개발하셔서 붓에 물을 묻혀서 그리면 종이가 젖으면서 검은색으로 글씨가 나타나는 신기한 체험이었어요. 선풍기로 말리면 다시 하얀 종이가 돼서 종이 낭비 없이 글씨연습하기 너무 좋은 체험이라 붓이랑 같이 집에 사가지고 왔는데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매일 연습하시더라고요. 힐링이 필요하신 청취자 여러분들께도 ‘물어서요’ 강력추천 드립니다.(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1200만 원짜리 붓은 어떤 붓인가요?
가장 저렴한 것은 2만 원부터 시작하고요 가장 비싼 붓은 최근에 1200만 원에 판매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붓이 최근에 판매가 되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감상을 할 수 있다는 건데요 그것도 한남동에 위치한 치킨집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치킨집에서 양념을 바르는 붓칠 역시도 일종의 예술활동이라는 진정성을 추 구하기 위해 대형 치킨프랜차이즈의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필장님의 최고급 붓을 구매해서 전시해 놨다고 하는데요.
다음 주 주제는 뭔가요?
먹물 이야기는 오늘 못했네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붓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먹. 먹으로 떠나는 예술여행입니다. 붓만큼이나 흥미로운 스토리들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