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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 Apr 20. 2016

우연히 정든 사람아


낯설은 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던 몸이
우연히 너를 만나 정이 들었다
가진 건 없다마는 마음하나 믿고 살자 다짐한 너와 나
이 세상 다하도록 변치말자
우연히 정든 사람아


수년 전, 할머니가 병상에 누워계실 때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깐 백수시절을 보냈던 나는 집 근처에 직장을 구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느릿느릿 걸어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출근했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천장을 보며 내가 퇴근하고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 내가 도착하면 병실 입구만 바라보고 있다가 씨익 웃었다. 


할머니의 낯선 둥지는 요양병원에서도 중환자실 쯤 되는 곳이었다. 아마 주말이었던 것 같다. 낮이었다. 할머니가 지겨웠는지 노래를 불렀다. 흥얼거리기 보다는 웅얼거렸다. 문득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녹음했다.


"할매, 다시 불러봐."


두어 곡을 부르고는 숨이 찬지 그만하셨다. 녹음했던 노래를 들려드리니 목소리가 영 듣기에 이상하다고 했다. 호흡이 약해져 바람 빠지는 쇳소리가 많이 났다. 나는 가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가사로 찾아보니 박우철이라는 가수가 1978년에 부른 '우연히 정들었네'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때는 그랬다고 한다. 각자의 고향을 떠나와 낯설은 부산땅에 자리잡았다. 공부에 특출나지도, 딱히 기술도 없던 할아버지를 만난 덕에 할머니는 많은 고생을 했다. 할아버지가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고 여기저기 발을 넓혀 뒤늦게 안정된 직장에 몸담을 때까지 할머니는 여리여리한 팔다리가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될 때까지 일하며 고모와 아버지와 삼촌 둘을 키워냈다. 곧은 허리가 휘고 팔다리가 앙상하게 마른 꽃가지같아진 어느 날엔가, 그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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