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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 Jul 14. 2016

옥탑방에 산다

옥탑방을 만나다

집에서 독립한지는 몇 해가 되었지만, 막상 자취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직업의 특성상 파견생활을 하다보니 회사 숙소에서 오래 지낸 이유가 크다. 너무나 힘들었던 작년 한 해. 다시는 파견을 가지 않겠노라며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기로 했다. 수개월을 피터팬의 좋은방구하기(네이버 카페)와 직방을 뒤졌다. 매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방을 구경하는 자체가 즐거웠다. 파견이 끝나갈 11월 무렵부터 주말마다 서울에서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 계좌에는 이삼백 정도의 적은 돈밖에 없었다. 신림 등 상경한 지방민의 한이 서린 동네에 가면 그것보다 적은 돈으로도 구할 수 있는 방이 많이 있지만, 소위 '잠만 잘 방' 느낌이었다. 집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온갖 살림살이와 사계절 옷, 책 무더기를 짊어진 내가 들어가 살 수 있을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지하철 2호선의 구로에서 낙성대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서울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구역이다. 방을 구하러 구로, 신림, 신대방, 서울대입구 등을 돌아다녔다. 특히 신림은 좁은 지역에 수많은 주택과 인구, 온갖 편의시설과 유흥시설이 뒤엉켜 묘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애초에 세를 놓을 생각으로 지은 건물이 많아서, 구색은 다 갖추었지만 정말 여기서 산다고 상상해보면 숨이 턱 막히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그 방들은 마치 깨끗하게 청소된 닭장 같았다.


신림에서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서울대입구에 도착했다. 서울대입구역을 기준으로 북쪽은 주택가가 많고, 남쪽으로는 대형 프렌차이즈나 카페 등이 몰려있었다. 오래되거나 새로 지어진 오피스텔도 있지만 일반 주택가가 많은 편이라서 방을 구경하는데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 중에서 옥탑방 한 군데를 보았다. 옥탑방에 대한 멋진 노래를 많이 들어서 로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방은 아니었다.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드넓게 펼쳐진(?) 옥상은 커녕, 주인 아주머니께서 채소 따위를 심어둔 빨간 고무대야가 발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다. 내부는 새로 단장을 해서 깨끗했지만 내가 바라던 그림은 아니었다.

방을 그만 보고 나가려 돌아섰는데, 살짝 열린 현관문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다.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노을을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마주한 나는 누군가에게 손날로 울대를 턱 하고 맞아버린 듯 억 하고 숨이 멎어버렸다.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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