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없는 땡모반 만들기
땡모반은 수박 생과일 주스를 부르는 태국말이다. 그러면 '수박주스 만들기'라고 하지 않고 왜 땡모반이라고 하느냐? 나도 태국 가봤다고 티를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과일주스라고 부르는 것들은 '바나나맛 우유'처럼 과일'향'을 첨가한 수준으로, 과일은 넣었다며 생색만 내고 시럽으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과일주스를 파는 곳에서 "시럽 빼고 주세요."라고 해보시라. 나는 모 과일주스 전문점에서 "그럼 아무 맛이 안날텐데요?"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아주 음료가 육칠천원씩 하는 비싼 경우는 예외이다.
태국 어디에서든 길거리에서 과일주스를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서 물가가 워낙 저렴하니 이런 길거리 음식 뿐만 아니라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사먹어도 매우 저렴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과일향 첨가 시럽주스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주스는 이국적이고 화려한 다른 과일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수박' 주스이다. 수분이 많고 너무 단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다.
나는 올해 청과물시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그 이점을 누리기 위해서 자취생답지 않게 과일을 아주 자주 사먹고 있다. 그 호사 중 최고는 단연 수박이다. 꾸역꾸역 4만원을 맞춰서 집앞으로 쓱-했던 배송이 아니면 사먹기 힘들었던 수박을 슬리퍼 끌고 집 앞에 나가서 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커다란 수박 한 통을 혼자서 해치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수박 껍질은 자취생에게 가장 곤욕스러운 짐이다.
그래서 날을 잡아 하루만에 해치우기로 했다.
재료: 수박, 칼, 믹서기
소요시간: 2시간 3분
만드는 방법:
1. 잘 익은 수박을 씨를 발라내어 깍뚝 혹은 길쭉하게 썰어 통에 담는다. (여기까지 2시간 소요)
2. 수박을 믹서기에 넣고 물을 '조금' 붓는다. (기호에 따라 우유, 사이다, 밀키스를 넣어도 된다.)
3. 갈아서 예쁜 유리컵에 부어 마신다.
수박 해체 작업은 길고 고된 노동이다. 텔레비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지만 칼질은 위험하므로 티비는 소리만 듣는다. 날파리 대환장 파티를 하고싶지 않다면 수박 껍질도 빨리 썰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다 버린다. (2시간 소요)
믹서기에 수박을 담고 물을 조금 붓는다. 나는 찬 음료를 싫어해서 얼음은 넣지 않았다.
믹서기는 가능한 큰 것으로 준비한다. 큰 믹서기가 없다면 마음의 준비를 한다. 화가 나기 때문이다. 조금만 담아서 갈고 수박을 조금씩 조금씩 추가하는 것이 요령이다. (1분 소요)
*인생 꿀팁: 혼자 살아도 믹서기는 큰 것으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 크다고 비싼게 아니라 비싼게 비싸다. 크고 저렴한 것을 사면 된다.
정직한 땡모반을 마시며 그 해 무더웠던 겨울을 추억하며 추억에 잠긴다.
땡모반 아러-이 !
(2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