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하며 배운 것
나는 종종 누군가를 해치고 싶어진다. 도구로 비열하게 해치는 상상을 한다. 물론 사회화가 되었기 때문에 실행하진 않겠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을 때 운동하러 간다. 운동하러 가서 열을 올리면 힘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도구 대신 뚜들겨 패고 싶다. 그런 상태가 되면 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럼 안 패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진정이 되고 안정감이 든다.
내가 약해서 비열하게 도구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해치고 싶은데 약하니까 비열하고 더 잔인해지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런 약한 면 때문에 머리도 엄청 굴리면서 산 거 같다. 지름길 혹은 한 방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가 이렇게 약하다는 걸 안 것이 자기만족 중 하나인 것 같다. 나 자신이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다. 인정하고 나니 그냥 현재의 내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그 지점부터 진짜 나의 힘을 쌓아가는 중인 것 같다. 약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약했었는데, 이제야 힘이 좀 생긴 건지 약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에 그렇게 강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 사실은 다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엔 약해서 약한 척하고 사는 사람, 약한데 강한 척하는 사람만 많은 것 같다. 강해서 강하게 사는 사람이 참 드문 것 같다. 강한 척 센 척 안 하고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만큼만 내 힘인 걸 아는 것에 대한 만족이 스피노자의 진정한 자기만족인 것 같다. 이것만큼은 불안하지 않은 힘이라 좋다. 그 힘만큼만 내게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참 좋다. 그런 여유가 더 많이 생길수록 좀 더 강해지고 유연해지겠지.
복싱은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많이 개입된 운동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가 참 적나라하게 보인다.
다른 삶에 있어서는 꽤 다층적이고 다질적인 복잡한 요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운동은 참 정직해서 딱 내가 한 만큼이라 내 위치를 참 알기 쉽다. 지름길도 없고 묘수가 통하지도 않는다.
내가 공중누각으로 쌓아 올렸던 나의 거만을 다 버리고 싶다. 바닥부터 쌓아가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의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