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비우자
지출 항목을 점검해보니 당연하게도 많은 부분(가장 큰...)이 식비 용도로 쓰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냉장고에 쌓아둔 식재료들이 너무 많았다. 결혼을 하고 몇 년간 새로운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느라 식재료를 이것저것 사들였었다. 야채 같은 신선식품이야 기한 내에 먹어야 하니 제때 소진되었지만, 냉동이나 상온 보관이 가능한, 유통기한이 긴 식재료들의 경우 1년 넘게 냉장고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묶음 구매 시 할인한다는 홍보에 혹해 한번에 다량 구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챙겨주셔서 쟁여놓게 된 것들도 있었다. 이러한 식품들의 경우 선택에 의해 들여놓게 된 것들이 아니어서 조리법을 모르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이유로 몇 년째 냉동실에 쌓여 있다. 문득 아무리 냉동해둔 식품들이라고 해도 혹여나 상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게 3월 냉파 프로젝트이다. 남편이 농담 삼아 전쟁 삼아 집에 갇히더라도 1년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데에서 착안하였다. 1년은 농담이지만, 한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한 달이 되기 이전에 냉장고에 있는 식료품들이 모두 소진되면 한 달 안에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야채와 같은 식선식품은 예외적으로 소진되면 계속 구매할 예정이다.ㅎㅎ) 우선 어느 책에서 본 대로 냉장고 문에 각 칸별로 들어 있는 음식 리스트부터 작성해서 붙여둘 예정이다. 그리고 그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까지 같이 적어두면 그날그날의 메뉴 고민 없이도 바로 그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가능할 것이다. (냉장고, 냉동실, 상온으로 나누어 포스트잇 작업을 하고 왔는데, 역시나 생각지도 못하게 오래 머물러있던 식재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냉장고에 쌓여있는 음식들도 많은데도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배달 음식을 먹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하였었다. 연달아 같은 음식을 먹을 경우 입에 물리는 느낌이 들어 다시 먹고 싶지 않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날 하루 컨디션이 안 좋거나 혹은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즉 뭔가 평소와 다른 날 평소에 먹는 음식이 아닌 다른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였다.
피곤하거나 혹은 물린다는 이유로 다른 음식을 먹고자 하는 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피곤할 땐 좀 더 간단히 먹거나 아니면 전날 미리 준비해두거나 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이 물리는 경우에는 좀 더 다양한 요리에 도전해보면 될 것 같다. 같은 식재료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가 무궁무진하니까 말이다. 신혼 초에는 다양한 요리를 시도해보았는데, 그중 실패하게 된 메뉴에는 다시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힘들게 만들어내도 나조차도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니, 시간과 나의 노고도 아깝고 심지어 식재료도 아까웠다. 이렇듯 내 요리 실력의 한계를 알게 되니 더 이상의 도전을 꺼리게 되고, 나름 자신 있는(?) 메뉴만 계속 요리를 하니 입에 물리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역시나 요리는 내가 아닌, 같이 먹게 되는 사람을 생각해서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혼자서 먹는다면 사실 가스레인지에 불도 켜지 않을 것 같은데 같이 먹을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고,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며 하게 되는 것 같다. 문득 이 귀찮은 걸 가족들을 위해 평생 해오신 엄마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가계를 위해 3월 냉파 프로젝트를 꼭 성공시킬 것이다. 첫 시작으로 오늘 저녁은 1년 넘게 냉동되어 있던 생선을 구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