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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Nov 17. 2023

잃었기에 거뜬했던

<공주시 백제마라톤 10KM를 완주하고>

 눈을 뜨니 창틈으로 들어온 햇볕이 침대까지 침입하고 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찬 공기가 섞여 있는 모양인지 잔 재채기가 난다. 가을의 노을은 다른 계절의 그것보다 훨씬 예쁜 법이지만 나는 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다.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밝힌다. 나를 찾는 메시지가 있을까? 평소라면 부질없을 질문으로 메신저 앱을 연다. 처음 보는 이름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와있다. 사뭇 땅기는 삭신을 있는 힘껏 펼치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뒤 모르는 이름을 누른다. 인터넷 기사의 URL이다.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제목에 엄지를 가져다 댄다. 그러자 금세 시간이 거꾸로 달려간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917/121219118/1



 집에서 요양생활을 시작했을 적에 남아도는 시간을 무엇으로라도 때워야 했다. 밤낮없이 어두워진 시아에 대중 없어진 수면시간을 고정해야 했었기에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낮에는 최대한 몸을 놀려야 했다. 칩거 생활의 유산으로 집 안에 놓인 운동기구와 홈트레이닝이라는 취미가 남았다. 전보다 나아진 체력으로 차근차근 밟아가는 걸음을 따라 지긋지긋한 팬데믹도 풀려갔다. 그래서인지 매년 열려왔던 지역의 마라톤 소식이 특히 올해에는 더 뇌리에 박혔다. 나는 곧바로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스마트폰으로 기상예보를 열었다. 전 날부터 몇 차례 확인하여도 숫자가 줄지 않아 불안감만 높아졌다. 그럼에도 집을 나설 때 가방 속에서 우산을 뺀 이유는 무언가를 들고뛰는 일이 불편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비 오면 맞지 뭐.'라는 대책 없는 웃음으로 우리는 마라톤 대회장을 향했다. 차에서 내릴 때에는 스마트폰마저 의자 시트에 두었다. 친구의 팔꿈치를 잡고 출발선 앞에 선 순간 텅 빈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그 어떤 정보도 당시 내게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흐린 시아가 밝아지고 있었다. 가진 것이라곤 시각장애인 협회에서 빌린 가이드 러너용 끈 뿐이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반대편 손으로 끈을 동여매고 주먹을 쥐었다. 내가 의존해야 할 상대는 주먹 건너편의 친구밖에 없었다.


 8천 명이 넘는 참가자들에 끼어 달리기를 하는 일이란 이리저리 치이기 십상이었다. 친구와 끈을 잡고 달려본 건 일주일 전에 시험 삼아 단 한 번이었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다닥다닥 붙어 뛰는 초반에는 더욱 심했다. 그럼에도 '마라톤을 뛸 생각은 객기였던가?' 따위의 의문은 들지 않았다. 유모차를 끌고 달리는 아저씨, 메트로놈을 켰지만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마라톤을 즐기는 분, 풋풋한 커플의 대화 속에서 걷고 뛰는 바람이 먹구름 덕에 시원했다. 평소 차로 오가는 길을 내 발로 디디니 금강의 물소리도, 피톤치드 가득한 수풀의 냄새도 더 강하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마시는 이온 음료수가 몸속에 오롯이 흡수되었다. 이 모두를 친구 덕에 느꼈다. 함께 보낸 세월만큼 끈끈한 페이스메이커가 내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을 때쯤 핸드폰을 가지고 달리는 분께 '지금 몇 시예요?'라고 물어보았다. 완주의 목표시간으로 정했던 때까지 10분, 남은 거리는 500미터였다. 슬슬 스퍼트를 올려볼까?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운동장에서는 중계방송이 한창이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목표지점에 다다랐다. '시각장애인 분이신가요? 큰 박수 보내주세요~'라는 소리가 운동장에 크게 울렸다.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들려왔다. 뿌듯함을 안고 물을 마시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마라톤은 어떻게 참여하셨어요?' 메달을 주는 분인가?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간단히 대답했다. 그런데 메달은 안 주고 이런저런 질문들만 계속되지 않는가? 몇 번의 질의응답을 넘기고서야 내게 질문을 하는 상대가 대회를 개최하는 언론사의 기자임임을 깨달았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의 늪에서 풀려난 건 사진까지 찍힌 뒤였다. 친구는 기자 분이 처음에 말을 걸어오실 때 본인을 소개하셨다고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지쳤던 걸 보면 아직 운동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점심으로 먹은 육전냉면과 씻고 누운 낮잠의 맛이 황홀했다. 단꿈을 꾼 듯 오전의 기억이 아득했다. 4년 전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운동을 취미로 삼았을까? 지역에서 매년 열리던 마라톤에 참여할 생각을 했었을까? 친구에게 함께 달려달라며 미안한 부탁을 했었을까? 아니다.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진다. 사진도 메달도 기억으로 남기기에는 부족할 내게 특별한 방식의 기록을 남겨준 기자분과의 인터뷰 말미에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시력을 잃었기에 마라톤 완주가 거뜬했노라고 말이다. 나는 함께 달렸던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사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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