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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짼토끼 Jan 27. 2023

2. 내 편이 없는 아이

엄마와의 애착 실패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른이 되면서 나의 생각의 절반은 엄마였던 것 같다. 

내 성격을 이해하고 엄마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40 평생을 쓴 것 같다. 


엄마를 떠올리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고 억울한 느낌이 한가득 든다.

나와 엄마의 관계는 평생이 그랬다. 조금 좋아지나 싶으면 또 멀어지고 차라리 사이가 나빠져서 실컷 욕이라도 하고 등 돌리고 싶은데 애매하게 적절한 엄마의 사랑과 풀리지 않은 불편한 마음은 해결되지 못한 채 오늘까지 온다.  


내가 육아를 해 보니 아기 때 애착형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와 엄마의 문제는 내가 어릴 때 애착관계에서 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아기 때 나는 매우 순했다고 한다. 

2살 터울인 오빠가 손이 많이 가서 힘들었는데 나는 너무 순해서 수월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4살 정도 됐을 무렵 오빠가 신장병으로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했을 때가 있었다. 

어린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큰 이모네에 자주 맡겼다고 한다. 

나도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살갑지 않고 무뚝뚝했던 이모가 어린 나에겐 무섭게 느껴졌었다. 

내가 잠이 들려고 하면 엄마는 몰래 나를 두고 나가려고 해서 엄마 옷자락을 잡고 잤다고 엄마가 얘기해주셨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엄마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다. 

아빠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긴 출장을 가시고 저녁예배에 간 엄마는 우리가 잠들 때까지 오지 않으셨다. 

그 밤이 문제였다. 

먼저 잠에 든 오빠는 심하게 잠꼬대를 하며 소리 지르고 울었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귀를 막고 대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교회에 갈 때면 오빠한테 먼저 자지 말라고 얘기했던 거 같다. 

교회에 가지 말라고 나를 혼자 두지 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한테 무엇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시원하게 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집터가 문제였을까? 

몸이 허약해서였을까? 

초등학생 때 나는 가위에 자주 눌렸다. 

교회에 다녔던 우리 가족은 나에게 귀신은 없다며 성경책을 안고 자라고 가벼운 일로 여겼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악몽은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부르다가 갑자기 귀신의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데 말이 안 나오는 꿈이다. 이 꿈은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꾼다. '


이렇게 자란 내가 엄마와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늘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고 역시나 평범한 사랑이라도 받지 못했다 여겨진 날은 나 자신이 너무 가여워 슬프다. 


엄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식 편을 들어주는 사람 아닌가? 

모든 엄마가 그러지 않다는 것을 슬프게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 

난 한 번도 엄마가 내 편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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