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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짼토끼 Jan 28. 2023

3. 슬픔 소화불량

아빠의 죽음 

대학교 졸업 할 무렵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내 성격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욕심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꿈은 없었지만 새로운 나라에는 한 번 가보고 싶었나 보다. 

어학연수를 떠날 무렵 아빠가 갑자기 황달로 입원을 하셨다. 간경화가 있어서 엄마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빠가 입원했던 병원 주차장에서 나를 배웅해 주셨던 것이 아빠가 일어서 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기억이다. 

미국에서 2000년 밀레니엄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에게 아빠가 위독하다고 한국에 와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1월 26일 아빠는 돌아가셨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때 아빠는 간경화가 심해져 간부전증으로 힘들어하고 계셨다. 말씀도 잘 못하시고 정신도 흐릿하셨다. 돌아온 나에게 미안함에 나온 말씀이신지 '이게 가족이란다' 라고 하셨다. 


장례식장에서의 일이었다. 

교회의 장로였던 아빠가 죽어서 교회사람들로 가득한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예배를 보는데 목사님의 기도가 나의 신경에 박힌다. 

아빠가 교회 헌금을 많이 내어 교회 신축에 큰 도움을 주었다며 아빠는 이제 없지만 가족들이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 정확한 문구는 잊었지만 그런 내용이었다. 

가뜩이나 슬픔에 예민해져 있을때여서 난 날카롭게 받아들였다. 아빠의 죽음을 애도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마치 우리 집의 불행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같았다. 아빠의 부재에 자신들이 챙길 이익이 사라질까 걱정부터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 슬픔을 구경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입관식에서도 난 울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울고 슬퍼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는 교회 사람들이 내가 울지 않은 것에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왜 울지 않았냐고 묻는다. 

엄마는 정말 모르는 걸까? 내가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엄마는 그랬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했고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분이 남편을 잃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가엽고 안쓰럽게 보는 것을 못 견뎌하셨다. 

아빠가 죽은 것을 몹시 자존심 상해하셨다. 슬픈 것보다 본인의 처지가 더 걱정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길 원했고 엄마는 나에게 혼자가 된 자기를 어떻게 두고 가냐고 원망하셨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이런 슬픔은 처음이라 힘든데... 내가 괜찮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시 엄마는 엄마부터 걱정하는구나. 


아빠가 죽은 슬픔이 엄마에 대한 미움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학연수를 떠났고 1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엄마, 오빠, 나 세 식구 같이 살았다.

평소 말이 별로 없던 가족은 아빠의 죽음에도 별 대화가 없었다.   


난 회사를 핑계로 밖으로 돌았고 엄마는 그런 내가 늘 불만이었다. 엄마의 불만과 우울, 부정적인 말투가 나를 더 겉돌게 했다. 

왜 조금 더 일찍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이제와 처음으로 바보같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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